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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May 02. 2023

외국인 사람 친구

인도네시아의 참 일꾼

오늘 친구를 만났다.

거의 반년만에 만나는 친구


지난해 일로 만나 프로젝트를 같이하면서 친구가 됐다.

국적은 인도네시아, 직업은 군인으로 가족과 함께 현재 한국에 파견 중이다.  


오랜만에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 일정대로 출장을 마치고 기차시간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 근처에 있는 그의 사무실 앞에서 연락을 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맞았다.


친구는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걸 알고 평소 그가 자주 가는 단골 카페로 나를 안내했다. 그는 익숙한 듯 아이스 아인슈페너를 주문했다. 나도 똑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난 뒤 남자들의 수다는 시작됐다. 한국에 사는 인도네시아인이 서울의 한 단골 카페로 나를 안내하는 상황이 낯설긴 했지만 아인슈페너 달달함이 아침부터 스케줄이 꼬이며 쌓인 정신과 육신의 피로를 한방에 날려줬다.



나는 업무상 동남아 파트너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다.

얼마 전까지 나도 동남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없지 않았다. 적어도 이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이 친구는 한국에 온 지 3년 정도 되어간다. 한국문화도 이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적응도 잘하고 있다. 지난해 프로젝트를 하면서 서로 엄청난 밀당도 하고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다. 다행히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좋은 성과도 얻었다. 그것을 계기로 결국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동남아 사람들은 보통 업무처리가 느린 편인데, 반면 이 친구는 자존심인지 책임감 때문인지 일을 최대한 빨리빨리 처리하려는 성격이었다. 아마도, 나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이 '빨리빨리'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듯했다.




작년에 같이 했던 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 군악대를 한국에 초청해서 '2022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에서 공연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전 당시, '물자지원'의 형식으로 UN군으로 참전, 우리를 도왔던 국가였기 때문에 초청 대상이었다.


그런데, 당초 인도네시아 측에서는 인도네시아 최고의 오케스트라를 파견하려 했다. 하지만, 엑스포 프로그램상 그라운드마칭, 로드퍼레이드를 해야 하는 상황. 우리는 정적인(Static) 오케스트라보다는 동적인(Kinetic) 밴드가 필요했다. 인니 정부 측 관계자는 계속해서 오케스트라만을 고집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때 이 친구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양측 상황을 이해한 이 친구는 나에게 약간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가 이미 8월 초. 늦어도 8월 말까지는 최종 결론이 나야 되는 시점이었다.


그날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인도네시아 측으로부터는 더 이상의 notice 없이 하루하루가 너무 답답하게 지나고 있었다. 그렇게 8월 말이 지나고 9월 초가 되었다. 어느 금요일 퇴근 시간이 지나고 나서(나는 이미 인도네시아 초청은 포기하고 긴급하게 대체 밴드를 물색 중이었다) 이 친구로부터 급하게 전화가 왔다. "Hey, Justin I have good news, finally, Indonesian Army Band will be there"라고 하며 기뻐했다. 나 역시 그의 말을 듣자마자 너무 기뻤다.


얼마 뒤에 그 친구를 통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해 들었다.

그 친구는 인도네시아 정부를 끈질기게 설득해서 정적인 공연만 가능했던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하여금 우리 요구에 맞게 동적인 퍼포먼스가 가능하도록 밤낮으로 춤과 노래 연습을 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대열 구성과 동선을 확인 등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일은 사람이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친구는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충실히 했던 것이다. 물론 나와의 약속도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결국 인도네시아 육군군악대는 예정대로 엑스포 행사에 참여하게 됐고, 그들의 열정과 다양한 레퍼토리에 감동한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실제로 그들은 정말 다양한 공연을 준비해 왔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인기 팝송, 웨스트 파푸아 지역의 전통 음악이 그들의 수준 높은 연주를 타고 행사장에 울려 퍼졌다.

나도 그들이 머문 약 2주간의 기간 동안 단원들과 친해졌고 그들과 함께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그들을 떠나보내는 날,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그중의 한 멤버가 했던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Korea is the best, I love Korea"라고 말하며 그의 당당한 한쪽 어깨를 내게 내민다. 의 어깨에는 인도네시아 국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순간 코 끝이 찡했다. 이 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을까.


오늘 반년만에 만난 친구를 만나니 겨우 6개월 전의 일인데도 벌써 추억이 돼버렸다.

친구가 대접해 준 아인슈페너 커피 한잔에 추억은 덤이 되어 버린 하루였다.


그 친구와 대화 중에 '브런치'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내가 이 스토리를 쓴다고 하니, 친구는 절레절레 손사래를 쳤다. 그때 본인이 너무 미안했다며 쑥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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