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아래 May 12. 2023

열무김치는 정(情)이다

김치 맛보다 인간미

미친 듯이 바빳 던 한 주. 수요일 밤 10시 30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늦은 밤 무슨 일일까 싶어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아 밤늦게 죄송합니다. 팀장님 어디세요?"

"지금 퇴근하고 있습니다. 00 아파트 지나고 있어요!"

"잘됐네요. 잠깐 아파트 00동 앞에서 잠시 뵐 수 있을까요?"

"무슨 일 이신대요?"

"일단 만나 보시면 알아요. 금방 내려갈 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네. 그러면 거기서 뵙죠"


나는 약속 장소로 이동해 그를 기다렸다.

조금 뒤 나타난 그의 손에는 묵직한 무언가가 들어있는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팀장님, 이거 별거 아닌데요. 집에 가셔서 맛 좀 보세요!"

"이게 뭐예요?"

"이거 집에서 키운 상추 조금 하고 열무김치예요. 요즘 입맛도 없으실 텐데 드셔보세요!"

"매번 이렇게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맛있게 먹겠습니다"


그가 전해준 쇼핑백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글라스락 뚜껑을 열어보니 발효 잘 된 먹음직스러운 열무김치가 보였다. 이 번이 두 번째라서 이미 그의 부인 손맛은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시큼한 냄새만 맡았는데도 입에 침이 고였다.


직장 동료 J는 항상 손수 기르거나 고향집에서 가져온 신선한 야채, 과일 등을 자주 나눠 주곤 한다. 그럴 때마다 '요즘 같이 자기만 아는 세상에서 이렇게 나누며 사시는 분도 아직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나눔에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


물론 그가 항상 뭔가를 나눠줘서 고마운 것 외에 그를 볼 때마다 기분이 더 좋아지는 이유는 그분은 항상 웃는 얼굴이다. 선한 얼굴에 항상 미소가 가득하다. 그뿐만 아니라 행동에는 '겸손'이 몸이 배어있고, 말에는 항상 '신뢰'가 있다. 그래서일까 그런 그의 자녀들은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아주 모범적으로 성장했다. 특별한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딸은 우리나라에서 첨단과학으로 유명한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당당히 취업에 성공했고, 둘째인 아들은 수재들만 갈 수 있다는 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의 평소 언행을 보면 그는 가정에서 남편, 아빠로서 역할을 충분히 다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분의 자녀들이 몸과 마음이 바르게 성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그와 함께하는 coffee break는 직장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주위에 마음 편하게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사막 같은 삶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를 만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그의 열무를 얹은 열무 비빔국수로 실종된 입맛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금요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