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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표수희 Feb 14. 2022

소식이 없는 옛 벗에게

고마워

단발머리를 하고 있어. 치마도 꽤나 자주 입는 것 같고. 가끔 네가 자주 들었던 오래된 팝을 귀에 담기도 하지.


이게 내 요즘 일상이야.

너는 어때? 잘 지내니?


십 년 전부터였나. 우리가 서로 연락이 닿지 못하게 된 게.


네가 해외로 가고 나도 육아로 바빴지.

그리고 요즘 생각해. '이 모든 건 변명일까.' 하고 말이야.



우리의 오래된 동네는 이미 재개발로 높은 건물들이 들어섰어. 너와 다녔던 길목, 시장, 학교까지 안 바뀐 게 없더라. 그러면서 나도 조금씩 바뀌고 너도 조금씩 달라진 것 같아.


우리는 딱히 싸운 적도 서로에게 섭섭한 일을 만든 적도 없지만 서로의 소식을 조금도 모르는 아이러니한 사이가 되었어.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너와 나의 사이를 다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


요즘의 난 여리지만 참 강했던 네 모습들이 순간순간 떠올라.


반대 땅 사람도 손가락에 닿을 것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이 네트워킹 시대에 어떤 SNS에서도 널 찾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어렸을 때 하던 숨바꼭질 놀이라도 하는 기분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SNS에 너의 이름을 드문드문 검색해 보는 이유는 아마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그 말들을 이 글에 실어보려고 해.



나는 사는 게 목마르고 졸리 울 때 너와 함께했던 그 시절을 떠올려. 철없이 떡볶이만 쫓아다니던 도서관 아래의 우리가 너무 우스워서 미소 짓게 되는 게 그 첫 번째 이유고, 가족만큼 좋았던 친구가 있었던 기억에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 드는 게 두 번째 이유야.


그 봄날의 벚꽃 같은 시절은 네가 같이 만들어준 거더라.


참, 우리에게 나이의 앞자리에 3이 올 줄이야. 난 오늘 아침에도 깜짝 놀랐어. 까먹고 있었는데 아침밥을 먹던 우리 딸이 "엄마 몇 살이라고 했지?"라고 물어서 다시 계산해보니 앞자리가 3이더라고.


그 시절의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한 지금의 내가 나는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지금쯤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 보면 아마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작아 보인다.'는 예전 선생님의 말이 실감이 나겠지. 시간이 흐르니까 커 보였던 것들이 작아 보이고 가벼웠던 것들은 꽤 많이 무겁게 내 위로 올라와 있어.


하지만 나는 이젠 그 무거운 것들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어. 잘 지탱하려 몸을 튼튼히 만드니 내 삶까지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너도 그렇게 튼튼하게 지내고 있니? 참 네가 그립고 보고 싶다. 



언제 한 번 도서관 가지 않을래? 

떡볶이 먹자.



그리고 친구야. 나는 네가 너무 고맙다.






어디에선가 함께 익어가는 내 친구 수빈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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