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우리들, 옛날/거기 그녀들

<지금/여기 우리들, 옛날/거기 그녀들>_프롤로그

by 규방즈

▶ 친구가 필요한 나이 서른셋: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펭귄계의 슈퍼스타 뽀로로님이 말씀하셨던가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내가 들었던 여러 님(공자님‧예수님‧부처님 등)들의 말씀 중에 이렇게 격한 공감을 불렀던 게 또 있나 싶다. 내 나이 서른셋..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삶의 과제들이 꽤나 쌓여 있단 걸 알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친구’들과 ‘놀고’ 싶다!


나는 원래 놀기를 좋아하던 뽀로로형 인간이었던가? 아니다! 체력‧기력‧정신력 어지간한 ‘력’은 모두 빵빵하던 20대 때도 이렇게까지 친구들을 찾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도대체 왜? 나는 30대가 된 이 시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친구’들과 ‘놀고’ 싶을까? 아니 애초에 ‘친구’들과 ‘논다’는 게 뭔가?


문득 생긴 의문에 나름의 답을 찾으려 며칠 전 주말을 떠올려본다.



내가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친구들과의 모임! 그날을 만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에 그려보니... 말풍선이 너무 많아서 등장인물 얼굴을 가릴 지경이다. ^^ 보이그룹 중 최애, 구매 추천 내돈내산템, 직장에서 만난 빌런, 다가올 명절에 있을 잔소리까지.. 오디오가 빌 틈이 없다.


그렇다! 누군가 내게 ‘친구랑 논다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실컷 떠들어 재끼는 것’이라고 말하련다. (영화‧전시 관람, 유명한 레스토랑, 핫한 카페 등) 장소와 시간은 매번 달라지지만, 우리가 함께 놀 때면 언제 어디서나 신명 나게 입으로 춤을 추니 말이다.


▶ 터질까 무서운 이야기보따리: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해”


예능 프로그램이었던가? 어떤 패널 하나가 여성의 수다와 관련한 농담을 하나 던졌다.


“여자들이 1시간을 넘게 통화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뭔 줄 알아요?”


“뭔데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해~”



저 농담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 기억이 있다. 아마 웃음을 위해 살짝 뿌려진 MSG를 걷어내면 보이는 일말의 진실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나와 친구들도 그렇다. 하루 온종일을 '떠들어 재끼고서도(놀아 재끼고서도)', 헤어질 땐 미처 꺼내지 못한 에피소드 하나씩을 손에 쥐고 있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며칠만 지나면 말해야 할 새로운 이슈가 금방 쌓인다. 눈 깜짝할 새 이야기보따리가 빵빵해진 우리는 또다시 서로가 고파진다.


왜 그리 할 말이 많은 걸까? 단순히 예전보다 만남의 주기가 길어져서일까?


우리의 대화들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폭풍수다의 원인‘만남의 횟수’가 아니라 ‘다종다기한 이야기의 소재’ 때문이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는다. 앞서 잠깐 들여다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겠지만... 정말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산부인과 진료 후기, 새로이 가족이 된 구성원들(오빠들이 결혼하면서.. 우린 시누이가 되었다..), 직장에서 겪는 회의감(그게 인간관계든 업무든), 지나간 전 남친,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남친과의 연애담부터 결혼‧임신‧출산의 선택을 둘러싼 심도 있는 토론까지...


우리 대화가 “삶은 무엇인가” 하는 무거운 철학적 주제로 시작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일상 곳곳에서 부딪히고, 또 앞으로 부딪힐 것으로 예상되는 일들에 대해 떠들다 보면... 나와 친구들은 어느새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의 수다가 하루 만에 끝날 수 있을 리 만무! 이쯤 되니 이야기보따리가 터질까 무섭다!


▶ 나의 그녀들에게 : “소울 메이트 No. 보따리 메이트 Yes!”


의식의 흐름대로 조잘거리다 보니 새삼 깨닫는 것이 있다. (좀 낯간지럽기는 하지만...) 내가 삶을 고민하는 순간마다 늘 나의 짐을 나눠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단 사실이다.


그녀들과의 폭풍 수다 속에서 나는... 혼자는 감내하기 힘들었던 과거의 실수를 위로받고, 고민투성이인 현재를 공유하며, 기대와 불안이 뒤섞인 미래를 응원받는다. 이게 바로 30대가 된 내가, 생애 어느 시기보다 격하게 친구들과 놀고 싶은 이유 아닐까.


위와 같은 경험이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보따리 메이트’가 최소 한 명쯤은 있지 않을는지. 세상이 나를 괴롭힐 때면 아른거리는 그 얼굴들 말이다.


문득 이 세상 여성들의 ‘보따리-메이트’는 누구이고, 그들이 풀어내고 있을 ‘보따리’의 구체적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진다. "그녀들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눴을까?"


망상회로를 돌려 각 잡고 구경해 보고픈 리스트를 만들어보니... 꽤나 재미있는 목록이 완성된다!


1. 내 또래였던 엄마와, 엄마가 결혼으로 얻은 전우들(동서지간) => 현재 세 분의 단톡방 이름은.... 노동자들ㅎㅎ

2. 과거의.... 할머니와 할머니의 엄마(내겐 증조할머니) => 두 손 바삐 부엌일을 하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시던 때가 떠오른다.

3. 박경리, 박완서, 제인오스틴, 버지니아울프... => 문인의 얼굴이 '남성'이었던 시절.. 글 쓰는 여자들 간의 공감과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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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선시대 고전소설 속 여성 인물들! => 지금의 우리와 너무 다른 삶의 궤도를 산 그녀들.. 그녀들의 이야기보따리 우리와 닮았을까? 달랐을까?


어딜 구경해도 재미있겠지만! 프로망상러인 나는... 현실세계에서 허구세계로 이동하는 13번이 꽤 구미가 당긴다!


▶ 조선시대 고전소설 속 여성들: “잘 봐! 이게 언니들 싸움이다!”


말이 나온 김에 조선시대 고전소설 속 여성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한국 고전소설의 역사는 대략 500년에 이른다. 하지만 ‘고전소설 속 여성인물’들의 지위가 500년 소설사 처음부터 단단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 작품의 경우 향유층(소설을 쓴 놈+소설을 읽은 놈)이 양반 남성이었던 탓에, 그들이 지닌 문제의식이 이야기의 중심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고전소설에 속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다채로워지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에 와서야 일어난 일이다. 이 시기에 들어 소설의 장르도 다양해지고 서사의 편폭도 확장되면서 비로소 여러 얼굴의 여성들이 등장했다. 개별 사연은 둘째치고 그녀들의 신분만 짚어봐도 양반가 여식‧궁녀‧기생‧무녀‧노비 등 참으로 다양하니 말이다.


소설사 시작부터 남성(인물)과 여성(인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했단 사실이 조금 씁쓸하기는 하지만... 바꿔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런 고소설의 역사가 더 짜릿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선시대 여성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두텁고 견고했을 유리천장을 야금야금 깨부수며...! 이야기 세계 속에 자신들이 설자리를 일궈내고, 얼굴을 드러내고, 목소리를 드높이는 느낌이랄까?


실제 개별 작품을 앞에 높고 이야기하면 사정은 더 재미있다. 고전소설 속 ‘언니들이 마주한 현실은 지금 우리의 것과 비교하면 꽤나 맵싹 할 뿐만 아니라, 그녀들의 골 때리는 대응 또한 심상치 않다.(고전소설 속 여성들이 죄다 충‧효‧열에 묶인 참한 여인들이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급하고 싶은 한 가지는 그녀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게 나의 그녀들이 있듯이! 고전소설 속 여성들 또한 이야기보따리를 함께 풀 짝꿍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끈끈한 관계자랑한다.


운영의 사랑을 자기 일처럼 고민해 주던 자란, 박 씨를 롤모델로 삼아 따르던 노비 계화, 심청의 키다리 언니가 되어주고 싶었던 장승상 부인, 자매애를 바탕으로 똘똘 뭉친 장화와 홍련, 젠더 정체성을 함께 고민하던 방관주와 영혜빙 등등... 감히 단언컨대 이 언니들이 이야기보따리 풀어내기 시작하면 시간 순삭이다!


▶ 지금/여기 우리들, 옛날/거기 그녀들: “삐야 삐야 깐따삐야!”

ChatGPT Image 2025년 9월 30일 오후 05_22_08.png


푸하하! 뜬금없이 등장한 이 그림은 챗도사님이 빚어낸 것이다.(챗GPT가 고전소설의 세계에 있었다면 필시 ‘도사’로 불렸을 것이다!) “현대의 여성들이 조선시대로 타임슬립하는” 이미지를 부탁했더니.. 챗도사께서 ‘짠!’ 하고 내어주셨다.


예상했겠지만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은 500년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지금/여기 우리들의 대화’와 ‘옛날/그녀들의 대화’를 포개보려는 작업이다.


20‧30 여성들이(나와 내 친구들) 겪는 자질구레한 이슈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위해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비슷한 상황 속에서 조선시대 여성들은(고전소설 속 여성들) 어떠했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미리 강조해 두지만 앞으로 써나갈 글에서 ‘고전소설의 줄거리나 이야기의 주제, 나아가 작품의 미학적 성취나 고소설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따위’를 전문적으로 기술해 보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지금/여기 우리들’이 훔쳐볼 만한 ‘옛날/거기 그녀들’의 장면을 끄적여보려는 것뿐이다.


P.S 뭔가 2% 부족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챗도사의 그림 앞에서 외쳐본다 “삐야 삐야 깐따삐야”(서른 셋의 내게 타임슬립의 주문은 역시 도우너의 주문!! 여러분은 각자의 주문을 외치시길 ㆅ)


글 반소저

올랄라! 현실과 망상사이를 자주 왕래하는 INFJ 고전소설 연구자. 판소리계 소설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애정소설로 박사학위를 받아야만 한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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