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우면 끝난 거야

<흥보가>의 작은 감초 '제비'

by 규방즈

간혹 왜 전공을 하필 ‘고전문학’으로 택했는지를 물어보는 분들이 있다.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귀여워서요.”


바쁘고 바쁜 현대 사회에서 보통 이런 류의 질문은 엘리베이터 안의 숨막히는 10초를 때우기 위한 스몰토크용으로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보통 이런 대화는 고전문학이 왜 귀여운지에 대해 상대를 충분히 이해시키지 못한 채 종료되곤 만다.


하지만 내새끼가 귀여운 점을 들어보라고 하면 밤을 새서 입을 털어도 부족한 것이 타오르는 덕후의 심장이 아니겠는가. 마침 오늘은 시간이 난 김에 고전문학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귀여워하는 것 중 하나인 <흥보가>의 ‘제비’를 소개해보겠다.




<흥보가>의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흥보’와 ‘놀보’ 형제라고 대답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나는 여기에 ‘제비’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로사와 로이만으로는 로켓단이 완성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나옹이 없으면 로켓단이 아니라 로켓일 뿐 아닌가.

<흥보가>에서도 제비가 없었더라면 이 이야기는 심술궂은 형님이 동생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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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들반들한 짙은 파란색 턱시도를 입고 턱 밑에는 멋있는 붉은 수염을 기른 이 녀석이 제비다. 언제부턴가 여자를 홀리는 남성을 일컬어 제비라고 하는데, 제비의 맵시가 멋있다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걸까 싶다. 몸매가 매끈하거나 동작이 민첩하고 깔끔해 보기 좋은 행동을 ‘물 찬 제비 같다’고 하기도 한다.

동양의 전설의 새인 봉황(鳳凰)은 온갖 동물의 멋진 부분만을 모자이크 해놓은 형상으로 그려지는데, 전반신은 기린, 후반신은 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등은 거북, 부리는 닭, 그리고 턱은 제비를 닮았다고 한다. 민화에 그려진 봉황도를 보면 턱 밑이 제비처럼 주황색으로 물든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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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흥보가>에서 이렇게 멋진 제비와 흥보의 첫 만남은 구렁이 때문에 이루어진다.


제비 부부 한 쌍이 처마에 깃들어 새끼를 낳고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큰 구렁이가 제비 집을 덮쳐 여섯 마리 새끼 중 다섯마리를 먹어치우는 사건이 발생한다. 흥보가 급급히 구렁이를 쫓아 냈지만, 이미 새끼를 지키려고 구렁이와 싸우던 어미 제비는 죽어있고, 남은 한 마리 새끼는 평상에 뚝 떨어져 발목이 부러져서 피 흘리고 발발 떨고 있다가 흥보 내외에게 거두어진다.


흥보는 한없이 탄식한다. “불쌍타, 내 제비야. 가긍헌 너의 목숨 구렁이에게는 안 죽었으나 이 지경이 웬 일이냐? 내 집이 가난허여 사람은 아니 찾어오나 너는 매양 찾아오니, 가난 박대 안 허기는 아무리 미물이나 제비 너희 뿐이로다. 좋은 집을 다 버리고 궁벽산촌 박홍보 집 험한 곳에 와 삼겼다가, 절각지환이 웬 일이냐?”

그리고 명태 껍질과 당사실로 부러진 제비 다리를 칭칭 동여 제비 집에 넣어주고, “제비야, 죽지 말고 멀고 먼 만리 강남 부디 수이 잘 가거라”하고 염원해준다. 여기까지는 다들 잘 알고 있는 장면.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첫 번째 귀여운 장면은, 남겨진 제비가 흥보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다리가 낫자마자 저 멀리 강남에 가기 위해 ‘날기 공부’에 힘쓰는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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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기 제비는 기특하게도 “구만리 장공 위를 높이높이 날아도 보고, 일대장강 맑은 물에 배를 쓱 씻어도 보고, 평탄한 넓은 들에 아장아장 걸어도 보고, 길게 매인 빨래줄에서 한들한들 놀아도 보고, 세우에 젖은 날개 실근실근 깃도 다듬”으면서 날기 연습에 매진한다. 이 부분을 읽을때마다 산책길에서 엉덩이가 토실한 웰시코기를 마주쳤을 때처럼 저항없이 웃고 만다.

흥보도 그런 제비가 기특하여 외출하고 들어오면 제비집을 만져보고, 집안에 있을 때는 늘상 제비하고 소일을 하고 보내는데, 이는 영락없는 반려조의 모습이다. 세월이 지나 구월 구일이 되어 제비가 따뜻한 강남으로 떠날 때가 되었을 때, 흥보는 서운함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며 이별하고, 제비도 섭섭해서 나갔다가도 도로 돌아와서 흥보를 보며 운다. 흥보와 제비의 교감이 진하게 드러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귀여운 장면. 강남에 도착한 제비는 ‘새 중의 황제’인 두견에게 가서 무사히 돌아왔음을 고하고, 자기가 겪은 일을 아뢴다. 두견이는 올빼미과에 속하는 맹금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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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보네 제비는 다리가 부러져 절뚝거리면서 황제 앞에 나가서 절을 하는데, 그걸 보고 황제는 “너는 왜 다리가 부러졌느냐?”하고 매섭게 호령한다.

이때 제비는 “예. 소조(小鳥)가 아뢰리다.”하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 신하들이 황제 앞에서 자신을 ‘소인(小人)’으로 낮춰 말하는 것을 따라한 것이다. 맹금류 앞에서 선 자그만 제비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자신을 소조라고 낮춰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싶지 않은가?

제비의 자초지종을 들은 황제는 제비 어미가 길을 떠나는 날이 하필 ‘뱀의 날’인 을사(乙巳)였기에 자기는 불길하다고 말렸지만, 어미가 괜한 고집을 부려 떠나서 뱀에게 우환을 당한 것이라며 안타까워한다. (두견아 너 T야?) 이게 어미 잃은 아기 제비 앞에서 할 말인가 싶긴 하지만 맹금류라서 사이코패스적인 성격이 있나보다하고 넘어가보겠다. 어쨌든 그러고서 두견이는 흥보에게 은혜를 갚을 영험한 박씨를 제비에게 선뜻 내어준다.


세 번째 귀여운 장면. 박씨를 입에 물고 돌아온 제비의 ‘제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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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를 입에 문 제비는 남쪽에서부터 온갖 중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면서 흥보의 집으로 돌아오는데, 조선땅에 이르자 하루빨리 흥보에게 박씨를 주고 싶어서 마음이 급해진 듯 하다.

흥보네 집은 경상도인 함양과 전라도인 운봉 사이에 있는데, 이때 남쪽에서 날아오는 제비의 여행 경로로 볼때 성립이 되지 않은 길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남대문을 넘어 칠패 팔패 청파 배다리 애고개를 얼른 넘어, 동작강을 월강, 승방을 지내어, 남태령을 넘어”오는 제비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이는 보통 어사또가 된 몽룡이나 신관사또가 된 변학도가 춘향을 보기 위해 허겁지겁 남원으로 달려 내려가는 경로로 빠른 장단인 중중모리나 휘모리 장단으로 소리된다.

제비 노정기의 끝무렵에 나오는 이 경로는 강남에서 출발해 흥보집에 도착하는 제비의 귀환 경로와는 맞지 않지만, 그만큼 제비의 마음이 춘향이를 보러 꽁지빠지게 달려가는 두 남정네들의 마음처럼 급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구만리 긴 긴 여행 끝에 흥보네 집 대들보 위에 올라앉어 제비는 다음과 같이 제비말로 운다.

“지지주지 주지주지 거지연지 우지배요, 낙지각지 절지연지 은지덕지 수지차로, 함지표지 내지배요, 빼드드드드드드.” 이는 겉으로 보면 비둘기가 ‘구구’하고 울거나 참새가 ‘짹짹’하고 우는 것과 같이 단순한 의성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에는 사실 숨겨진 속뜻이 있다.


'지지지지(知之知之) 주지주지(主之主之), 거지연지(去之年之) 우지배(又之拜)요, 낙지각지(落之脚之) 절지연지(折之燕之), 은지덕지(恩之德之) 수지차(酬之次)로, 함지포지(含之匏之) 내지배(來之拜)요'

이를 사람말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아시는지요, 아시는지요, 주인님, 주인님? 떠나갔떤 제비가 돌아왔습니다. 떠나갔던 제비가 또 인사 드립니다. 떨어져서 부러진 다리를 이어주신 은덕을 갚으려고 박씨를 물고 와서 인사 드립니다. “


날기 공부에 힘썼던 아기 제비가 이렇게 문자를 써서 어엿하게 자신의 말을 고하는 어른 제비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제비의 매끈한 머리 위에 박사모라도 하나 씌워주고 싶은 심정이다.

어엿하게 성장한 제비는 이 말을 하면서 입에 물었던 박씨를 흥보 내외 앞에 떼그르르르르 굴려 놓고, 흥보 부부 사이를 들어갔다, 나갔다, 나갔다, 들어갔다 이리 저리 넘으며 애교를 부린다.



어쨌든, 이렇게 고전문학 작품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한낱 미물들의 행동거지와 그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아주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나는 현생을 살면서 차갑게 식어버린 인류애를 이런 이야기에서 채우곤 한다. 여기에는 아주 사소하지만 인간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이 패러디 되어 있기도 해서, 이러한 표현을 상상하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피식 피식 웃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글 이채은

웹툰, 웹소설로 연구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고전문학자. 연암 박지원의 소설로 석사를, 판소리 <춘향가>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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