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
오늘은 내 커리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취업과 이직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최근 들어 면접을 보면, 내가 속해있는 디지털 광고 업계에서 나는 특이한 경력에 속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광고 대행업부터 광고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플랫폼사, 그리고 대행사와 플랫폼사 사이에서 광고 상품의 중간 유통을 책임지는 미디어렙사 등 다양한 곳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즉 광고주 빼고 디지털 광고산업의 다양한 분야에서는 거의 다 일해왔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곳에서 일한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나는 내가 특이한 경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일단 한번 해보다 보니 이런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처음 시작은 백수였다. 취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호기롭게 대학을 휴학 없이 스트레이트로 졸업하고 난 뒤 결과는 1년간의 백수 생활 혹은 취준생(취업준비생)이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부터 1년간의 백수 생활 동안 흔히 말하는 대기업 계열사의 종합광고대행사와 대기업 마케팅 파트 위주로 지원했다. 그 외에도 네임밸류가 높다 생각되는 곳은 무조건 지원했다. 그러나 면접까지 가면 다행이고,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는 결과는 허다했다. 자존감은 나락을 찍은 지 오래였다. 그러다 백수 생활 1년째 우연히 디지털광고대행사의 검색광고 파트에 6개월 채용전제 인턴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큰 외국계 광고대행사의 계열사긴 했지만, 기존에 지원한 곳에 비해선 내 기준으로는? 목표보다 미치지 못한 곳이기에 망설임이 있었지만 결국 입사했다.
그럼 왜 들어갔나? 일단 큰 외국계라는 약간의 네임벨류는 나의 자존심을 약간 채워줄 수 있었고 대학 졸업 후 이미 1년간의 취준생활은 한 상황이기에 더 이상의 공백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 빅데이터(Bigdata)가 굉장히 핫(Hot)했는데, 검색광고도 인터넷 사용자의 검색을 즉 기록 데이터를 기반으로 운영해야 하는 광고 상품이기에 데이터를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도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다. 일단 해봐서 손해 볼 것은 딱히 없으니까.
이렇게 여러 가지 나만의 합리화를 갖고 회사에 입사한 나는 예상보다 적응이 쉽지 않았다. 대학생 때는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던 나는 어떠한 사람들(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도)과도 잘 지내고 협업해야 하는 이러한 구조가 정말 쉽지 않더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기에 실수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는데 그로 인해 듣는 꾸중 같은 것들이 대학생 때 많이 높아져있던 자존심을 조금씩 건드렸다 (자존감이라 표현할까 생각했지만, 솔직히 자존감은 아니고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을 갓 졸업하고 다시 신입사원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는 사회 초년생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여러 어려움을 갖고 있던 회사생활 첫 6개월은 정말 고군분투였고 매일매일 퇴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다시 6개월이 지나고 1년쯤 되었을 때 내 소감은? ‘제법 다닐만하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안주하면 어떡하지?’ 바로 이거였다. 회사 생활 1년 정도 하니 회사 내에서 의지할만한 친한 사람이 몇 명 생기고 좋아하는 상사도 생기고 여기에 따로 책임이 있는 높은 직책이 아닌 거의 팀 막내였기에 책임은 없지만 업무는 익숙해서 제법 할만한 그런 상황이 되었다. 다만, 원래 목표했던 곳은 이 회사가 아니었기에 계속 여기에 안주하면 어떡하지 하는 은은한 두려움 또한 있었다. 두려움이 크진 않았지만, 내심 걱정도 되는 그런 심정이었다. 이렇게 잘 지내면서 고민하던 와중에 나는 어느새 3년차가 되었고, 그때 나는 그토록 우려하던 안주함에서 벗어나 첫 이직을 하게 되었다. 3년 동안 이직을 아예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단 1-2년 만의 경력은 충분치 않았기에 합격까지 잘 이어지지 않았고, 3년 차쯤 되니 어느 정도 경력으로 인정받아 이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이직하는 회사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였지만, 단순 에이전시가 아닌 광고 상품을 판매 및 운영하는 광고 플랫폼 회사라는 점에 이끌려 입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글로 풀어보겠다) 직무도 기존에 광고주의 광고를 운영 및 관리하는 Account Manager(광고 계정 관리자) 업무가 아닌 Sales Manager(영업 관리자) 업무인 전혀 새로운 업무였다. 영업의 영자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시도한 것이 바로 세일즈 매니저라니..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로 내가 그런 이직을 결심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를 되돌아보면 나는 일단 당시의 편안함을 벗어나 더 발전하고 싶은 욕구가 컸고 그다음은 ‘일단 해보지 뭐, 성실히 노력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첫 회사 입사와 마찬가지로 나는 일단 해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입사 후, 나는 적응을 굉장히 잘해서 실적 1등을 달성한 세일즈 매니저가 되었다.라고 쓰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엄청 후회해서 수습 3개월도 안되어 지사장님께 가서 퇴사를 외쳤다. 영업은 그야말로 동물의 세계 그 자체였다. 실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했으며, 목표로 세워진 영업 실적을 반드시 달성해야 했다. 신입도 예외는 없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콜드콜을 해서 상품을 판매할 수 있어야 했다. 기존에 내가 하던 광고 관리 업무는 정말 우아하고 편안?이라고 하기엔 어렵지만 영업과 비교했을 땐 상대적으로 정말 할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결국 시간문제였고, 다행히 팀장님과 선배들을 잘 만나 어찌어찌 1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아쉬움과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던 영업 조직에 대한 아쉬움으로 결국 입사 1년 만에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1년 만에 이직한다 해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은 아니다. 외국계 회사였고, 대만의 본사와 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영어로 업무 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고, Salesforce와 같은 글로벌 업무 솔루션을 배울 수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나는 영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1년 동안 영업을 하며 정말 영업에 영자만 들어도 질리는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이때 배운 영업 기술들이 추후 나의 업무에 굉장한 영향을 많이 주었다는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일단 해본다’ 정신이 무조건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내 이직이 무려 4번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 얻은 것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솔직히 얻은 것은 굉장히 많고 그 안에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경험은 단 한 개도 없다. 두 번째 회사 퇴사 후 내가 향한 곳은 국내 1위 미디어렙사였다. 여기서는 5개월 만에 퇴사를 결정한다. 이는 회사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개인적인 사정(남편과의 결혼, 그리고 결혼 후 해외 살이 예정)으로 인한 퇴사였다. 물론 회사에서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금방 또 다른 이직을 결정할 정도로 큰 아쉬움은 아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내 이직의 역사는 ‘일단 해본다’ 정신을 무조건 찬양하지는 않는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단 해보는 것은 다소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사유가 있다면, 나는 일단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일단 가봐야 알 수 있다. 일단 해보는 것을 뒷받침할 사유가 충분하다면 굳이 해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