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쩌다 글로벌 라이프
오늘의 이야기는 '어쩌다..'는 지난번 이야기인 일단 한번 해본다의 2탄? 혹은 외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한번 해봤고, 그러다보니 어쩌다 글로벌한 현재 상황까지 흘러오게 된 과정기이다.
혹시나 '일단 한번 해본다'를 읽지 않은 분들은 일단 한번 해본다를 읽은 다음에 이 글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해당 글을 통해 내가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나는 토종 한국인이다. 어릴적 캐나다 작은할아버지 댁에서 엄마랑 약 2달 정도 어학연수를 한게 내 해외살이의 전부이다. 그 흔한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조차도 대학시절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한국에서의 대학생이란 신분, 그리고 대학 생활 이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보다 미성년자 학생 신분도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어른도 아닌 그때만의 자유가 훨씬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의 보호 밑에 있으면서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으로서의 자유를 어느정도 누릴 수 있는 그런 마음 편한 자유가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해서 새로운 도전을 꺼리진 않았다. 공모전이나 연합동아리와 같은 각종 새로운 모임에 참여하고, (많은 분들이 그러겠지만) 과감히 전공과는 관련이 없는 광고/마케팅을 취업 방향으로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어쨌다는 것이냐. 이 문단을 요약해보건대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는 않았지만 여하튼 그 방향성이 글로벌한 사람은 아니었다 라는 것이다.
이런 내가 요즘 삶을 돌아본다면... 정말 말도안되게 글로벌하다. 이런말을 하는게 좀 오글거리기도하고 웃기기도 한데, 일단 현재 외국에 살고있고, 외국인이 90%이상인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거주하는 나라에 놀러오는 외국인 친구와 가끔 어울리기도 하고, 근무하는 회사의 다른 나라 지사를 방문하는 경우도 꽤있다. 즉 내 삶의 전반이 글로벌하게 꾸려져있는 것이다. 문득 외국인 친구를 만나러 가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건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어쩌다 이런 삶을? 어쩌다 이런 글로벌한 삶을..... 이건 정말 어쩌다 이렇게 살게 된 것이다. 단 한개도 오랫동안 목표로 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니 이건 말 그대로 '어쩌다' 이다.
나는 원래 취업준비를 하며 강력하게 한국 회사에서 한국인들과 일하기를 원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어로 일해도 쉽지않은데 영어까지 사용하며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문화와 역사를 공유한 한국인끼리 더 통하는게 많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물론 본의아니게 첫 회사가 외국계 회사였지만, 한국 지사였기에 모두 한국인과 함께 일해 영어로 일을 할 일은 거의 전혀없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아 이건 외국인과 외국어로 할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영어를 아주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외국어였기에 늘 쉽지 않은 영역이었다. 여행가서 영어로 쇼핑은 하고 레스토랑에서 밥은 시킬 수 있기는 해도 업무는 그 복잡성을 고려한다면 전혀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웃긴 것은 내가 다녔던 그리고 다니고 있는 4개의 회사 중 단 1개만 토종 한국 회사라는 점이다. 영어로 일하기 싫다면서 계속 외국계를 다니다니 웃기지 않은가.... 첫 외국계 회사와 두번째 외국계 회사는 의도한 바가 전혀 아니었다. 첫 회사는 한국어로만 100% 업무를 했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두번째 회사는 영문 이력서인 레쥬메를 제출하고 영어 면접이 2회 정도로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정도로 본격적인 외국계 회사였다. 대부분의 한국 지사에서의 업무는 물론 100% 한국어였지만 국내 지사가 크지 않았기에 본사 팀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경우에는 영어를 사용해야 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영어로 일하기에 대한 자신감이 좀 붙었던 것 같다. 어느정도 적응 되었을 땐, '오..나 영어 좀 하네?' (지금 보면 전혀 아니지만!) 라는 다소 오만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다 3번째 한국 회사에 들어가게 될 때 당시 들어갈 실의 실장님이자 면접관이었던 분이 나에게 물었다. '영어 점수 보니까.. 영어 좀 하죠?'. 자신있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입사 후 왠걸... 당연히 영어 쓸 일이 1도 없다. 한국 회사에 같이 일하는 거래처의 거의 100%가 한국인이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때 실장님은 영어 실력을 왜 물어보신 것일까. 물론 업무를 해보니 간혹가다 가뭄에 콩나듯 외국 거래처가 있긴했는데, 영어로 업무를 진행해야하는 수준은 아니었고, 몇마디 영어로 이메일을 쓰는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상황과 회사에 대한 자부심으로 우리 회사에 들어오려면 이정도 영어는 할 줄 알아야지라는 마음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한국어 100%로 일을 하다보니 마음속에 아쉬움이 퐁퐁 솟아났다. 전 회사에서 조금 끌어올린 영어 실력이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언어는 사용하지 않으면 잊어버릴 확률이 높은데 그것에 대한 아쉬움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같다. 힘들게 올린 실력이 내려갈까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물론 뭐 이런 사유로 이직을 결정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아쉬움이 있다 정도였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앞두게 되었고, 남편의 회사로 인해 결혼 후 1년 반정도 뒤에 3년정도의 단기 해외 이주가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면 해외 이주 시 바로 회사를 그만둬야 했던 것이다(해당 회사에서의 휴직은 임신이 아닌이상 불가하였다). 고민하던 와중에 우연히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인터뷰 오퍼가 들어왔고, 인터뷰 당시 면접관이던 APAC 지사장님께 앞으로의 상황을 설명하고 추후 해외 원격 근무가 가능한지 여쭤봤다. 그랬더니 의외로 쉽게 오케이를 외쳐주시며 내부 유사한 케이스까지 설명해주셔서 나는 바로 이직을 결정했다. 해외에 나가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때는 면접관이자 미래의 내 상사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그리고 APAC 소속으로 일하는 것이기에 회사 내에서의 업무는 영어 사용이 100%였다. 한국어는 한국 거래처들과 업무할 때만 사용가능했다.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어쩌다 글로벌 라이프가.
이렇게 새롭게 들어간 회사에서 내 적응기를 쓴다면... 이것도 진짜 A4 용지 한 5장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그냥 입사 당시 내 상황을 짧게 단적으로 이야기해본다면. 솔직히 첫 6개월 동안 회사 내 회의 내용을 거의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에 나의 보스가 나에게 가장 많이 하던 말이 바로 'As I mentioned before(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였다. 정말 영어가 안들렸다. 이런 100% 영어만 사용하는 회의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경우의 다양한 악센트 그리고 빠르게 말하는 속도가 이해를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회의중 내 의견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했는데, 대본이나 도움없이 내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된 건 입사 후 8-9개월이 흐른 후였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컨디션이 좋지않거나 익숙치 않은 주제가 나오면 솔직히 영어로 버벅될 때가 꽤있다. 회의하며 영어 사전 페이지를 띄워놓고 찾으면서 듣기도한다. 그리고 때론 영어로 복잡한 상황을 설명하거나 메일로 써서 보내야 할 땐 아직도 쓰기 전부터 머리가 아플 때가 많다.
이렇게 아직도 하루하루가 고군분투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고 버티다 보니 어느새 만으로 약 3년 가까운 시간을 현재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올 6월이 지나면 이 회사는 내가 다닌 4개의 회사 중 가장 길게 다닌 회사 중 1개가 된다. 그리고 3년 중 약 1년간의 시간은 해외에서 원격 재택근무로 일하고 있다. 그래도 이정도 되니 이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려움은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그리고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들과 일하며 느끼는 바도 굉장히 많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들도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문화나 생활 습관 같은 것들이 다를 때가 있지만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근저에 깔린 보편적인 감정(ex. 친구와 가족에 대한 사랑, 불편함이나 불의에 대한 분노, 잘못에 대한 반성과 미안함 등)과 같은 것들이 결국은 모두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감정을 배경지식으로 두고 외국인과 이야기한다면 다름보다는 공감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자신할 수 있다.
그러나 토종 한국인으로써 글로벌 라이프가 마냥 재미있고 편한 것은 아니다. 위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국어를 업무나 일상 속에서 늘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 늘 쉽지않고, 외국인과 보편적인 감정은 같다해도 문화적 차이는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익숙함보다는 익숙치 않음으로 인한 불편함도 꽤 많다는 것
이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에게 글로벌 라이프가 반드시 경험해야하고 의미있는 경험일까요? 라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모르겠다. 글로벌 라이프를 경험하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만으로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경험 또한 무궁무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로벌 라이프를 통해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바로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다양한 외국인들과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면서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경험들을 많이 하게된다. 그러면서 '저건 혹은 저사람은 왜저래?'가 아닌, '아 그럴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즉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상황을 마주하게 될 때 이상하게 보는 것이 아니고, 생각의 폭을 넓혀서 삶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서 한국인으로서 기존에 갖고 있는 편견을 많이 무너뜨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이러한 배움이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솔직히 아직 한국인으로서 편견도 많이 남아있기도하고, 그냥 단순한 생각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치만 언젠가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있다면 이러한 글로벌 라이프, 경험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