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마주치는 갈등에 대처하기
어릴 적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를 많이 챙겨주었고 항상 곁에 있어주던 고마운 친구였지요.
우리는 늘 붙어다녔고 학교가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참 잘 맞는 친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는 조금씩 다름을 느꼈습니다.
틀린 건 아니었어요.
친구는 더 많은 친밀감을 원했고 저는 좀더 자유로운 교우관계를 희망했지요.
친구는 모든 일상을 공유하고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단짝 친구를 원했고
저는 다양한 친구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고루 지내는 교우관계를 희망했지요.
고맙고 착한 친구였지만
우리에게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저는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다정한 시작과 그동안의 고마움, 그리고 제가 바라는 교우관계를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끝맺음에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하여 더 돈독한 사이가 되길 바란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빠트리지 않았죠.
평생 영원할 것 같은 우정도 언젠가는 위기가 오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학교'라는 집단 안에서 아이들은 나와 결이 비슷한 친구, 다른 친구를 다양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빛깔은 너무나 다채롭고 선명하여 잘 섞이지 않는 경우가도 많습니다.
누군가는 친해지고 싶어서 한 농담이 누군가에겐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일을 그르치게 되면 본의아니게 누군가는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어쨌든 피할 수 없는 이 '불편함'은 그저 참고 있을 수 만은 없지요.
그러면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일 까요?
불편함은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표현이 서툰 아이들은
손이나 발이 먼저 나가기도 하고
'우리 절교해!' 라는 메세지를 보거내거나
갑자기 어느날 부터 이 친구를 모른척 해버리기도 하지요.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 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다소 억울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평소 친구들에게 함부로 행동 하던 A양의 태도를 늘 참아주던 친구들은 어느 날 더 이상 A양을 받아주기가 힘들었다. 그때부터 친구들은 A양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놀이에 끼워주지 않는 등의 행동을 하였고 보다못한 A양의 엄마는 이 친구들을 왕따 가해자로 여기며 학교폭력 접수를 희망했다.
모범생 B군은 늘 수업을 방해하는 C군의 행동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날도 C군은 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거나 예의없게 행동하였고 보다못한 B군은 C군을 한대 때렸다. C군의 부모는 B군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였다.
참 안타까운 사건들입니다.
참던 친구들의 입장에서 보면 친구의 불편한 행동을 꾹꾹 눌러참다가 한번 폭발했을 뿐 인데 그 대가가 너무나 참혹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상황은 교육청에서 사안 조사를 통해 자세히 상황을 살펴보고 판단을 하겠지만 그 과정이 아이들과 학부모 모두에게 참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불편함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먼저, 친구의 행동이 매우 거칠 때에는 내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요청을 드리는 것이 낫습니다. 어른도 다루기 힘든 아이를 내가 제압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너무 거친 친구들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보다는 한발짝 떨어져서 어른들께 도움을 요청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때 거리를 두는 방법 또한 중요한데요, 이 친구를 모르는 척하거나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닙니다. 혹여나 그 친구를 '무시' 혹은 '따돌림'했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간결하면서도 부드러운 말투로 꼭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니, 미안한데 나는 안하고 싶어." "응 안녕"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요즘 엄마들은 내 아이가 어디가서 맞고 오는 것보다는 한대 때리고 오는게 낫다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친구가 먼저 나를 때려서 내가 때렸다 하더라도 나 역시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신고 될 수 있습니다. 운이 없는 경우에는 때린 건 친구가 먼저인데 내가 때렸을 때 친구가 더 많이 다쳐서 나에게 더 큰 책임과 비난이 올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한테 "너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친구를 때리지 말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거나 도움을 요청해. 그게 널 지키는 길이야!" 라고 말합니다.
또한 마음에 맞지 않는 친구와는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친구 옆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하더라도 그 자리 자체를 피할 수 있는 용기와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무리 안에 있는 친구가 마음에 안들고 일이 잘 해결될 것 같지 않다면 그 무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무리에서 나오는 용기,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합니다. 특히 여자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무리나 집단 안에 속하고 싶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계속 그 안에 머물며 문제를 키우는데요, SNS가 문제가 된다면 단호하게 SNS를 탈퇴하고 무리 안에서 자꾸 문제가 생긴다면 그 친구들과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게 맞습니다. 이 거리를 두지 못해 추가적인 문제 속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분명 나와 맞는 친구는 무리 밖에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의 표현으로 친구와의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경우라면
제가 처음 소개했던 학창 시절의 경험과 같이
- 평소 친구에 대한 고마움
- 친구가 고쳐주었으면 하는 점 또는 내가 불편했던 점
- "우리 앞으로도 서로 노력해서 잘 지냈으면 좋겠어." 와 같은 희망적인 끝맺음
위와 같이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짜고자 "너 정말 싫어!" "이제 너랑 안놀아!"라는 식의 메시지는 좋지 않습니다. 특히 거친 메시지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그 동안 내가 참아왔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나의 노력은 보이지 않고 내가 했던 거친 말만 캡쳐본으로 남게되니까요. 특히 마지막 희망적인 끝맺음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메시지는 너를 비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잘 지내보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강조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집단 생활은 참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사회 속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게 될 우리 아이들에게는 위와 같은 연습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자녀가 어른이 되어 마주 할 사회 속에서는 이보다 더한 일들도 많을 테니까요. 내가 마주한 거대한 '똥(문제사항)'을 훌륭한 '거름(나를 발전시켜 주는 자양분)'으로 만들어 쓸 수 있도록 내가 직면한 문제상황과 그 불편함을 슬기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