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은 누구를 위한 훈육일까?
얼마 전 아들이 재미있게 읽던 책을 함께 보았습니다.
최은옥 작가의 『칠판에 딱 붙은 아이들』.
갑자기 칠판에 손바닥이 붙어버린 세 아이와
그 사건을 통해 ‘소통’이라는 주제를 함께 버무린 아주 매력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제목도 설정도 참 신선했어요.
칠판에 손바닥이 붙은 아이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 흥미로운 사건을 이렇게 진지한 메시지로 풀어낼 수 있다니 감탄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책을 덮고 나니
제 머릿속에도 무언가가 딱 붙은 엄마들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엉덩이가 딱 붙은 엄마들' 이지요.
지난 달 아들과 함께 과학관에 갔을 때였습니다.
아들과 함께 체험활동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었지요.
이 체험은 움직임을 통해 화면에 있는 미션을 수행하는 체험으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다소 줄이 길게 늘여져 있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
아들은 기뻐서 팔짝 뛰었고
화면 속 미션에 맞춰 신나게 몸을 움직이며 체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휙 뛰어들어와 우리 아이 앞을 막아서며 미션을 가로챘습니다.
그 아이는 계속해서 다른 아이들의 활동을 방해했고
주변에 있던 엄마들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 역시 당황스러워 한 마디 하려고 했으나
여기는 제 교실도 아니고
요즘 시대에 남의 아이를 직접 훈육하는 것이 조심스러워 일단 주변을 살피고 있었죠.
서로 눈치만 보며 가만히 있는 사이
저는 조용히 아이의 보호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근처 의자에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주형아, 이리 나와. 거기 가면 안 돼.”
하지만 아이는 듣지 않았습니다.
“주형아, 나오라니까.”
그래도 아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는
그 말을 반복할 뿐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체험이 끝날 때까지 말이에요.
중간 중간 저와 주변 엄마들이 아이에게 정중히 말해도
아이는 반응하지 않았고
그 엄마 역시 끝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저는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 엄마는 엉덩이를 떼지 않았을까?
그 말은 누구를 위한 말이었을까?
정말 아이를 위한 제지였을까,
아니면 ‘나는 할 만큼 했다’는 스스로의 위로였을까?
가끔 놀이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봅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자녀를
멀찍이서 말로만 타이르는 엄마들.
정작 아이 곁으로 가지는 않죠.
그럴 때마다 저는 생각합니다.
혹시 피로함과 난처함 속에서 남들에게
‘나는 노력하고 있다’는 표시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러한 엄마들의 행동은
아이를 위한 개입이 아니라
엄마 자신의 안도감을 위해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제스처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진실되 보이지 않지요.
이러한 것들은 누구를 위한 훈육일까요?
아이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을 때
엉덩이를 번쩍 들어 아이의 옆으로 다가가 주세요.
가까이에서 그 상황을 보고
말이 아니라 몸으로 제지해 주세요.
편안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적극적으로 아이를 위한 개입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엄마의 움직임이 있어야
아이도 행동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아이에게 필요한 훈육은
멀리서 들려오는 엄마의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