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닿는 길을 지우다
설 명절 연일 눈이다.
동네 마을길은 회당 비용을 받고 제설을 하는데 눈 치우는 양반이 명절 연휴여서 출타 중
동네 사람들끼리 하루에 두 번씩 치워보지만 쌓아 놓을 곳도 없고 내리는 눈의 양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어릴 적 내리는 눈에 잠결에 소나무 가지 툭툭 부러지는 소리를 듣곤 했는데
이렇게 많은 눈은 내 평생 처음이다.
집집마다 자식들 내려오지 말라고 연락하고
우리도 명절 음식 준비 전이라 그야말로 냉장고를 파서 차례를 지냈다.
방송에서 명절이라고 한복 입고 차례 지내니
어머니가 한복을 찾으시고 조기 사라 가래떡 빼라 챙기시는 바람에 어머니 계시는 동안은 차례를 지내야 한다.
그러나 설 대목장을 보기도 전에 눈이 내려 냉동실의 굴로 굴 떡국을 끓이고 그야말로 성균관에서 권장하는 간소한 상차림이 되었다.
명절에 차례 안 지내고 여행 가는 사람들이 더 잘 사는 후손이 아닌가 싶어
우리 애들은 명절에 여행 가느라 못 온다고 하면 언제든 감사한 일이다.
때 아닌 폭설로 도시로 닿는 길은 이어지지 않고 고립되었지만 눈 속에 파묻힌 산골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장독 높이만큼의 눈이 쌓였으니 저것이 하얀 쌀인 양 마음 한편 푸근하고 든든하니 그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