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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의 속내
by
애주
Jan 2. 2025
집에 물건을 들이는 것을 저어하지만 내게 아직도 욕심이 남아 있다면 그중 항아리를 들이는 일이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옛날 항아리
빈 집터임을 증명하는 것 중에 머위밭과 기왓장, 항아리가 아닐까 싶은데 쓸만한 항아리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느라 귀한 몸이 되어 주둥이들이 다 엎어져 하늘을 품지 못하고 있다.
엎어놓은 항아리를 보고 주둥이는 없고 밑바닥은 뚫려있다는 바보 개그도 있으니~
빈 집에 웅숭거리고 앉아 많은 사연과 시간을 품었을 비틀어지고 금 간 항아리 몇 개가 내게로 왔다.
인생이 무한할 것처럼 부엌에서 칼자루를 쥔 시어머니의 매운 시집살이
간장을 뜨다가 항아리에 투영된 말간 하늘에 눈물 한 방울로
짠맛을 덧댔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자 살림 솜씨는 항아리를 보면 안다며 바쁜 와중에도 항아리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던 어머니
그땐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말이었는데 거실 눈바로 보이는 항아리를 보면 한번
닦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맘으로 재촉하게 된다.
나보다 더 늙은 항아리에 물을 채워
켜켜이 담겨 있을 세월을 우려내며
항아리보다 좁고 빈약한 우리네 삶
모든 걸 품고 묵묵히
지켜보았을 사람 사는 세상이 어떠했을지...
그 깊은 속내를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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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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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산골로 귀촌하여 어머니와 동갑의 남편과 삽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수영이나 달리기 자전거로 소일 나 이러다 철인 3종 하려나.가장 동적인 운동을 하면서 가장 정적인 나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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