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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소회

by 애주


흥과 끼와 말술을 겸비한 외갓집 식구들

이모들과 외삼촌이 모여 남매계를 하는 날이면 엄마는 등에 옷을 구겨 넣고 꼽사(꼽추) 춤을 추었고

여섯 살 나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잡고 하지 말라고 울면 이모들은 저노무 가시내 멀라고 데리꼬 왔냐며 구박을 하곤 했다.


1년에 한 번 여자들 명절이라는 대보름날

엄마와 엄마 친구들은 거지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오곡밥과 나물 동냥을 다녔다.


샘골댁이 거지 분장을 한 엄마를 몰라 봤다는 얘기를 해마다 무용담처럼 나누던 엄마의 젊은 시절


술 한 잔 입에 못 대던 아버지는

할머니 몰래 막걸리 한 대 받아다 아랫방에 놔주던 것으로 청상과부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보상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이다음에 커서 술은 안 마셔야지 친구들을 웃기지는 말아야지 했는데 웬걸 오늘 추적추적 비가 내리니 대낮부터 한 잔 생각이 나고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너 참 웃긴다고 한다.


부모의 그 나이가 되어야 그 나이만큼만 이해한다고 했던가


내 나이 예순 무렵에야 비로소 고단하고 고단했던 어머니의 그 나이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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