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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의 기하학 (3)

리만 공간

by Neutron

질량이 만들어내는 중력장의 개념을 우주에 적용하면 실제 우주의 공간은 평평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이론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은 국소 영역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무한대로 뻗어있다. 물론 그 시공간은 질량의 중심에서 최대로 휘어 있고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평평해지나 아무리 먼 지점이라도 곡률이 0에 수렴하지만 절대로 0이 될 수는 없다. 우주 공간에서 모든 물질들을 제거하고 사과 하나만 덩그러니 놓았을 때에도 사과에 의한 중력장은 온 우주에 도달한다. 작은 질량이라도 하나 존재하면 온 우주의 시공간이 곡률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우주는 평평한 공간이 아니다.


평평한 공간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한 두 직선은 서로 만나지 않는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일들은 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경험(우리의 사실적 경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상황이 실제인 것처럼 학교에서 가르친다) 또한 그 믿음을 강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만일 우주의 공간이 평평하고 어떠한 곡률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평행한 두 직선은 영원히 서로 만날 일이 없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휘어진 공간의 개념이 등장했고, 심지어 질량이 존재하는 한 우주의 어느 구석에 가더라도 평평한 공간은 없다는 충격적인 결론이 나오게 되었다. 이로써 유클리드 기하학이 더 이상 현실 세계를 묘사하는 도구로 쓰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지구 위를 살아가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평행한 두 직선은 어딘가에서는 만나게 되어 있다. 나와 내 친구가 적도(equator)에 10m 간격으로 서서 적도에 수직인 방향으로 걸어간다고 해 보자. 출발할 당시에는 분명 나와 내 친구는 평행하게 걷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북극점에서 만나게 된다. 지구 표면이 곡률을 가진 구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유클리드 기하학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아주 이상적인 공간을 묘사한 것이다. 평평히 펴진, 반듯한 공간이란 이 우주에 애초부터 없었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이상적인 공간은 우리의 머릿속 상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현상을 설명할 때 이런 반듯한 공간의 개념은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진실을 왜곡할 수 있다.


1800년대 중반 독일의 수학자 베른하르트 리만은 곡률을 가진 공간을 정의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은 공간의 곡률이 0인 아주 이상적인 상태의 기하학이라고 주장했다. 리만의 휘어진 공간에서는 직선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다. 그 대신에 측지선(Geodesic)의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 측지선이란 어떤 공간에서 두 점 사이의 거리가 가장 짧은 경로를 의미한다. 아무리 복잡하게 비틀어지고 휘어진 공간에서도 측지선은 단 하나가 존재한다. 지구의 표면 위 두 지점을 잇는 최단 경로는 두 지점과 지구 중심을 지나는 평면 위에 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미국 LA까지 최단거리의 비행경로를 찾고자 하면 서울을 한 점, LA를 한 점, 지구 중심을 한 점으로 하는 삼각형이 포함된 평면을 만든다. 그 평면이 지구 표면과 만나는 선은 하나의 원주(원의 바깥 둘레)가 되는데, 측지선은 이 원주를 따라가는 경로가 된다. 지구를 완벽한 구(Sphere)라고 하면 표면에서의 측지선은 곡률 1/R을 가진 곡선이 된다 (여기서 R은 지구의 반지름). 곡률이 0인 평평한 공간에서 측지선은 직선이며 이 것은 현실에서 보면 아주 아주 특이한 상황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공간은 평평하지 않다. 질량 주변의 공간은 더 많이 휘어있고 곡률을 가지며 빛도 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 최단거리로 이동한다. 바로 측지선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위 그림은 가속도 운동을 하고 있는 상자 안의 사람이 빛을 보았을 때 느끼는 현상이다. 상자 밖에서 보고 있는 나는 빛이 직진하고 있으나, 상자 안에 있는 내 친구는 빛이 휘었다고 느낀다. 상자가 중력가속도 g로 가속되고 있으므로 그 안의 내 친구는 자기가 지구에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지구에서도 빛은 휜다. 그런데 상자 밖에서 내가 잰 빛의 이동 경로와 상자 안에서 친구가 잰 빛의 이동 경로가 다르다. 상자 안에서 친구가 본 빛은 휘어지는 경로로 이동하며 직선 경로보다 길다. 빛 알갱이가 한쪽 벽면에서 들어와 반대쪽 벽면에 부딪치는 동일한 사건에서 친구가 본 빛의 경로가 더 긴 것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빛의 속도는 동일해야 하므로 내 친구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이다. 가속도가 더 크면 빛의 휨이 더 커지고 빛이 진행하는 경로가 더 길어진다. 더 강한 중력장안에 있는 사람의 시간이 더 느리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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