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 간격
우리는 시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접하면서 세상을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공간상에 정지해 있는 물체도 시공간상에서는 시간축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조금은 황당한 아이디어에 따라 시간과 공간을 한데 묶었다. 시간과 공간은 서로 얽혀있고 시공간 상의 사건에 대하여 상대운동을 하는 기울어진 좌표축에 따라 시간이 느려졌다 빨라졌다 하고 길이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한다. 이 모든 결과의 기본 가정은 빛의 속도가 어느 좌표계에서 보더라도 동일한 속도를 가지고 속도의 합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16세기 고전물리학자인 갈릴레이가 도입했던 상대속도를 가지는 관성좌표계와 정지좌표계의 관계를 갈릴레이 변환이라고 한다. 이 당시에는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속도의 합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라는 가정 하에 속도 성분을 좌표계에 투영하였다. 당연히 정지좌표계의 시간은 움직이는 관성좌표계의 시간과 동일하게 흐른다는 가정이 있었다.
정지좌표축 x 방향으로 v의 등속도로 움직이는 관성좌표축 x'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내가 정지해 있고 내가 본 한 지점의 좌표값이 x일 때, 나에 대하여 v의 속도로 움직이는 내 친구가 동일한 지점을 바라본 내 친구의 좌표값 x'은 어떻게 표현되는지 정리한 것이다. 내 친구의 좌표계는 내 좌표계에 대하여 양의 방향으로 v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으므로 내 친구 좌표계의 원점은 시간 t가 흐른 후 vt 만큼 이동해 있다. 따라서 내 친구가 그의 좌표값을 읽을 때는 내 좌표값에서 vt만큼을 빼주어야 한다.
x' = x - vt
t' = t
이제 상대성이론의 핵심인 광속 불변의 원리를 이 좌표계에 적용해 보자. 내가 내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를 측정해도, 내 친구가 그의 좌표계에서 같은 빛의 속도를 측정해도 그 값은 c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관계가 성립한다.
x = ct : 나의 좌표계
x' = ct' : 내 친구의 좌표계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x가 x'과 다를 때 당연히 t도 t'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것은 내 좌표계의 시간과 내 친구 좌표계의 시간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갈릴레이 변환의 기본 개념이 무너졌다. 이 세상에 불변이고 절대적인 것은 빛의 속도뿐이고 공간과 시간은 빛의 속도를 동일하게 하기 위한 들러리에 불과하다. 빛의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이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식을 조금 변형시키면 다음과 같다.
x - ct = 0
x' - ct' = 0
지금부터는 민코프스키 시공간 좌표계에서 시간축이 왜 허수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보겠다. 계산에 자신이 없는 독자들은 중간 과정을 건너뛰고 결론만 보면 된다.
위 식은 임의의 상수 λ를 도입하여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λ는 0을 포함한 임의의 실수이면 된다.
(x - ct) = λ (x' - ct') ----------------- (1)
이번에는 빛을 x축과 x'축의 음의 방향 (앞의 경우의 반대 방향)으로 쏜다고 하면 동일한 과정을 거쳐 다음 식이 성립한다.
(x + ct) = μ (x' + ct') ---------------- (2)
여기서 μ도 0을 포함한 임의의 실수이다.
식(1)과 식(2)를 연립하여 정리하면,
x' = (λ + μ)/2 - (λ - μ)/2 ct
ct' = - (λ - μ)/2 x + (λ + μ)/2 ct
a = (λ + μ)/2, b = (λ - μ)/2 로 놓으면,
x' = a x -b ct ------------------------ (3)
ct' = -b x + a ct --------------------- (4)
내가 정지했을 때 내 좌표계에서 본 물체의 길이와 내 친구가 정지해 있을 때 그의 좌표계에서 본 동일 물체의 길이가 같아야 한다는 조건을 이용하여 식(3)과 식(4)를 연립하여 풀면 a와 b를 구할 수 있고, λ와 μ 값도 구할 수 있어 로렌츠 변환이 유도된다(유도 과정은 생략하겠다). 여기서 얻어진 로렌츠 변환은 다음 조건을 만족시킨다.
결론 : x² - c² t² = x'² - c² t'² = 일정 ------- (5)
이 것은 어디서 많이 보던 식 아닌가. 바로 1차원 공간과 허수 시간축이 포함된 2차원 민코프스키 시공간 좌표계에서 두 사건(여기서는 원점과 또 하나의 사건) 사이의 시공간 거리를 계산할 때 쓰인다. 시공간 시간축을 허수로 만들면 자연스럽게 식(5)를 민코프스키 시공간에 적용할 수 있다.
S² = x² + (ict)²
= x² - c² t²
S²는 시공간 상에서 발생한 두 사건 사이의 거리와 관계된다. 우리는 이 물리량을 시공간 간격(Spacetime Interval)이라고 부른다. 식(5)에서 보듯 이 시공간 간격은 어느 좌표계에서 보던 항상 같은 값을 갖는다.
공간을 3차원으로 확장하면 4차원 시공간에서 시공간 간격은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S² = x² + y² + z² + (ict)² = x² + y² + z² - c²t² = 일정
이 간격은 좌표계에 상관없이 같은 값을 가져야 하므로,
S² = x² + y² + z² - c²t² = x'² + y'² + z'² - c²t'²
갈릴레이 변환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 시대에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고 불변이었다. 그래서 그 시대에는 공간상의 거리가 불변이었다. 이 거리는 정지한 사람이 측정하건 움직이는 사람이 측정하건 변하면 안 되었다.
로렌츠 변환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지금 시대에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고 변한다. 우주에 절대적인 것은 빛의 속도뿐이다. 시간과 공간이 각각의 축을 담당하여 시공간 상에서의 사건을 표시한다. 이 시공간에서는 좌표계에 따라 길이가 변한다. 그런데 여기서도 좌표계에 따라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절대 공간에서의 길이처럼 시공간에서의 시공간 간격은 변하지 않는다.
시공간 간격은 두 개의 사건 사이의 시공간적 거리이다. 내 친구가 들고 있는 지팡이의 길이는 공간상의 거리를 차지한다. 내 친구가 나에 대하여 빠른 속도로 달려갈 때 이 길이는 공간의 축소에 따라 짧아진다. 지팡이의 손잡이와 끝의 위치가 가까워진다. 그래서 공간적 길이는 더 이상 불변의 물리량이 아니다. 시공간 좌표계에서는 서로 떨어져 있는 두 지점을 '위치(Location)'라고 부르지 않고 '사건(Event)'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개념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시공간 좌표계에서 이 두 사건 사이의 거리를 시공간 간격이라고 부른다. 시공간 좌표계에서는 시공간 간격이 불변의 물리량이다.
예를 들어, 사과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건과 사과가 떨어져 지면에 닿는 사건이 있다고 하자. 사과가 나무에 매달려 정지해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사과는 시간축을 따라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과가 나무와 분리되면서 지구를 향해 가속도 운동을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땅바닥에 닿는다. 사과가 정지해 있던 사건의 시공간 좌표를 (0, 0)라고 하고 t초 후에 사과가 거리 h만큼 낙하하여 땅바닥에 닿는 사건의 시공간 좌표를 (-h, ict)라고 해 보자. 시공간 간격을 계산하면 S² = h² - c²t²이며, 이 값은 내가 보던 내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자동차 운전자가 보던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이 볼 때 거리 h와 시간 t 각각은 내가 보는 것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h² - c²t²는 누가 봐도 같다.
만일 S² 값이 0이라고 하면 h² 값이 c²t² 값과 같다는 말이다. 이 말은 사과가 빛의 속도로 떨어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그 어떤 질량을 가진 물체도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경우 사과는 빛이어야 한다. S² 값이 0보다 크다고 하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사과의 운동이 빛보다 빠르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사과가 땅에 닿는 사건을 사과가 나무에 매달려있는 사건보다 먼저 경험할 수 있다. 사건의 인과관계가 파괴된 경우이다.
사과가 낙하하여 땅에 닿는 사건이 나중에 발생하는 경우를 만족하는 조건은 S² 값이 음수일 때뿐이다. 그래서 S² < 0인 경우 인과관계가 지켜진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