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모티브 - 초능력과 꿈의 해석
단편은 써보았지만 장편은 처음이다. 시작하기 전에는 이야기의 구성과 인물, 역사적 배경, 학술적 근거, 개인적 경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마지막으로 재미를 모두 하나의 글에 잘 녹여낼 수 있을지 두려웠다. 처녀작이 없으면 완성작도 있을 수 없다는 무모한 오기로 첫 타이핑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수단은 많지만 특히 ‘글’이라는 독특한 교감법으로 독자를 설득하기가 여간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전문적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동호회 활동이나 소모임에 참여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주제를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데 글, 특히 소설만큼 효과적인 매체가 없다는 데 스스로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년 시절 하나의 특별하고 분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 언제인지 날은 정확히 기억에 없지만, TV에서 유리겔라의 초능력 시범을 생중계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을 해냈다. 숟가락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슥슥 문지르니 엿처럼 휘다가 모가지가 댕강 부러졌다. 고장 난 시계를 노려보며 ‘움직여!’하고 소리 지르니 정말 초침이 움직였다. 더 놀라운 건 방송국 카메라를 통하여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들을 초능력자로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특별한 기억은 여기서 비롯된다.
그날 나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이 모여 TV를 시청하고 있었고 유리겔라의 안내에 따라 집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고장 난 탁상시계를 들고 와 앉았다. 유리겔라는 많은 사람의 생각이 모이면 모일수록 더 큰 염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고,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 모두가 한 뜻으로 시계가 움직이기를 염원해 달라고 했다. 그의 선창으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마침내 모두가 ‘움직여!’라고 외친 순간 내 머릿속으로 찌릿 전기가 전달된 느낌이 들고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고장 난 시계의 초침이 갑자기 째깍째깍 하며 가는 것이다. 설마 하며 재미로 해 보자던 염력 시연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우리 남매와 엄마는 서로를 쳐다보고 커진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진짜 가네.’하며 너무 신기해했던 내가 그 시계 뒷부분을 자세히 보기 위해 바닥에 놓였던 시계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그 시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동생과 엄마는 그 일을 잊은 것 같다. 나에게는 너무 충격적이어서 평생 못 잊을 그 기억이 그들에게는 별 것 아닌 옛 일이 되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엄마와 동생은 신의 능력을 믿었으며 그런 잠깐동안의 초자연적 현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일로 생각한 것 같다. 그 시절 유리겔라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사기꾼’, ‘마술’, ‘거짓말’이라는 단어로 점철된다. 너무 오래되어 나도 내가 스스로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을 만나 그 이야기를 해 보면 모두 동일한 경험을 했음이 입증된다. 나만의 경험이 아니다. 우리가 고장 난 시계를 움직인 그때부터 나는 초능력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침 당시 소년 잡지 같은 데에 쓰인 구미가 당길만 한 읽을거리들은 외계인이나 초능력에 관한 것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했다.
초능력이 뇌의 능력을 발휘하는 기술에 지나지 않다는 어떤 믿음이 생기기 시작할 때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접하게 되었다. 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정신학적 입장에서 설명한 책이다. 이 역시도 청년 시절 내게 충격을 준 한 권의 책이었다. 언젠가 초능력과 꿈을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그 계획이 지금 실행되고 있다. 어떤 독자들에게는 황당무계한 공상과학 소설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글이지만 나름대로의 경험과 과학적 지식들을 총 동원해서 설득력을 갖추려 노력하였다.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면 그것은 오롯이 나의 잘못이며 책임이다. 완벽할 수 없는 처녀작을 힘겹게 완성해 가는 초보 작가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질책보다는 응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