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공태양(11)

국가정보원

by Neutron

제천역에 내려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시내버스를 타고 성진 아저씨가 있는 마을로 갔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지나 복덕방 유리문을 슬쩍 들여다보니 그때 그 할아버지가 혼자 신문을 읽고 있다. 나와 엄마는 복덕방 뒷길로 걸어가 성진 아저씨 집 앞에 섰다. 따라온 사람은 없었다. '아저씨'하고 작은 소리로 불러본다. 대답이 없다. 대문을 두드리려 문고리를 잡는데 문이 '낑' 하고 열린다. 이상한 생각에 슬며시 대문을 열고 들어와 현관으로 향한다. 현관도 조금 열려있다. 문 틈으로 작게 '아저씨'를 한 번 더 외쳐본다. 역시 대답이 없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마루가 어지럽혀져 있고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다. 집안 방 문은 모두 활짝 열려있다.


"아저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아."


나는 복덕방으로 달려갔다. 할아버지는 며칠 전 친구가 찾아와서 아저씨와 같이 차를 타고 나갔다고 한다. 그 친구의 인상착의를 물으니 내가 손가락을 부러뜨린 그 정보국 남자와 일치했다. 순간 '아뿔싸' 했다. 내가 성진 아저씨를 만나러 온 그날 그들이 나를 미행한 것이다. 그리고는 아저씨의 위치를 확보하고 납치해 간 게 분명하다. 그때만 해도 누가 뒤를 밟는지 주변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을 때고 조심할 생각도 못했다. 나 때문에 아저씨의 위치가 발각되었다고 생각하니 미안하고 화가 났다. 내 손으로 아저씨를 구해내지 못하면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저씨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국정원 남자를 만나는 것뿐이다. 엄마에게는 당분간 대전 외갓집에 가 있으라고 하고 나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엄마가 말렸지만 괜찮다며 안심시켜 주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렸다. 역사 밖은 이미 어두워졌다. 대형 TV 속 뉴스에서 갑작스러운 안개 현상을 보도하고 있다. 기상학자가 나와서 한 낮 도심 한 복판에 가시거리 5m도 안 되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갑자기 사라진 현상이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뉴스는 시민들이 휴대폰으로 찍은 제보 영상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었다. 성진 아저씨에게 들은 바로는, 아빠의 연구가 원래 대기의 움직임을 제어할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바람과 구름의 생성과 이동을 제어해서 대기의 에너지를 최대한 천천히 분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시연했던 것이 좁은 범위기는 하지만 대기를 제어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방법으로 더 큰 에너지를 투입하면 비구름과 태풍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내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아직 모른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현재 그런 도움을 줄 사람은 성진 아저씨 말고는 없다.


집 근처로 가자 검은 차 한 대가 서 있는 게 보인다. 멀리서 그 안을 들여다보니 손가락 부러진 요원이 아까 나를 쫒던 동료 두 명과 함께 타고 있다. 잠복하는 것 같긴 한데 모두 쪽잠을 자고 있다.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그 차 앞으로 걸어갔다. 뒷 좌석 차 유리를 두드리니 그들이 깜짝 놀라서 깬다. 손가락에 흰 붕대를 두른 그 남자가 입가의 침을 닦으며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유리를 내리라고 손짓하자 그는 서둘러 창문을 열었다.


"아저씨. 제가 협조하기로 했어요. 뭐든지 물어보세요."

"어... 그래... 착하구나."


그들은 나를 뒷 좌석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했다. 미안하지만 절차라며 내 머리에 검은 복면을 뒤집어 씌운다. 그들은 내가 사물의 건너편을 훤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차는 강남대로를 지나 내곡동 쪽으로 향하고 있다. 내곡동 숲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서 커다란 게이트를 지나니 '정보는 국력이다'라고 쓰인 표지석이 보인다. 차가 멈춰 서더니 그들이 나를 데리고 내린다.


"아저씨, 여기가 어디예요?"


내가 일부러 모르는 척 물어본다.


"응, 아저씨가 일하는 데야. 무서워할 건 없어. 잠깐 뭣 좀 물어보고 보내줄 거니까."


그들은 내 머리에 검은 복면을 씌운 채 나를 끌고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계단 조심해라."


나는 앞이 안 보이는 척 발을 헛디디는 시늉을 했다. 양 옆에서 내 팔을 잡고 있던 남자들이 힘을 줘 나를 받친다. 그들이 데려간 곳은 작은 방이다.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작은 회의실 같다. 손가락에 붕대 감은 남자가 나를 의자에 앉히고 자기도 건너편에 앉았다. 내 팔을 잡고 들어온 남자가 머리에서 복면을 벗겨주고는 방을 나갔다. 나는 눈이 부신 척 인상을 한 번 찡그렸다.


"여기서 우리는 솔직한 대화를 할 거야. 숨기는 거 없이 아저씨한테 모두 말해야 돼, 알았지?"


내가 겁을 집어먹게 하려는 듯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최근에 아빠를 만난 적이 있니?"

"없어요. 일곱 살 이후로는 못 봤어요."

"좋아. 그럼 김성진이라는 사람을 아니?"

"아빠의 친구분이라고 들었어요."

"최근에 만난 적이 있지?"

"만난 적은 없어요."

"너, 두어 달 전에 제천에 갔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제천에는 왜 갔니? 김성진 만나러 간 거 아니야?"

"그냥 여행 다녀온 거예요."

"자꾸 거짓말하면 혼난다."


대화를 하는 중에 방을 둘러싼 벽 건너편을 들여다본다. 성진 아저씨가 있는 곳을 찾아야 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이런 작은 방들이 모여있는 층이다. 아마도 아저씨는 다른 층 아니면 다른 건물에 있는 것 같다. 그 요원은 계속 집요하게 나를 추궁하고 있다.


"네가 김성진 집에 들어간 걸 본 사람이 있는데도 거짓말할래?"

"어느 집에 들어간 건 맞지만 거기가 성진 아저씨 집인 건 몰랐어요. 단지 어떤 아저씨가 날이 더우니 시원한 거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해서 따라갔을 뿐이에요. 저는 거기서 주스만 마시고 바로 나왔어요."


계속 거짓말을 해댔다. 그 요원이 성진 아저씨와 대면 심문을 하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 그 요원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붕대 감은 손가락을 쳐들며 말한다.


"그럼, 이건 어떻게 한 거냐? 꼴통이 갑자기 전교 1등 한건 또 뭐고?"


이때 갑자기 누군가 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이가 좀 있는 턱수염을 덥수룩이 기른 갈색 머리 외국인이다. 그는 내 맞은편에 달린 커다란 거울 뒤에서 계속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반인이 볼 때는 빛이 반사되어 거울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 너머를 볼 수 있었다.


"미스터 리, 내가 하지."

"오케이, 페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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