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의 소회
꽉 움켜쥐고 살아왔다. 학비를 책임져야 하는 아빠, 생활비를 제공해야 하는 남편, 명절마다 섭섭지 않을 선물을 안겨드려야 하는 사위. 매 달 꼬박 꽂히는 월급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나의 욕심을 부여잡고 살았다. 그것은 남에게 명함을 건넬 때마다 새삼 느끼게 되는 대기업 직원의 특권이었다.
어려서 상상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던 자화상은 적어도 남이 보기에 그리 나쁜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 속의 나는 어색하지만 웃고 있었다. 나는 잘 참고 견디는 법을 배웠다. 30년 가까운 회사 생활은 속에서 꾸물거리는 진짜 나를 억누르는 힘을 길러주었다. 가끔 엉뚱한 곳으로 분출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화를 잘 다스렸고 크게 모난 짓은 하지 않았다. 그림 속의 나는 화려한 채색과 세련된 배경을 뒤로하고 잘 짜인 액자 속에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아니면 알아채지 못할 서늘한 슬픔이 어색한 미소 속에 서려있었다. 액자 밖으로 나와 나를 바라보는 순간 정말 나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내가 아니었고 그림 속의 배경은 나의 껍데기였다.
수십 년의 직장 생활, 그것은 진흙으로 빚은 얇은 반죽을 오랜 세월 동안 하나하나 덧붙여 나의 껍데기를 만들고 있었다. 그 얇은 층이 겹겹이 쌓일 동안 나는 그 안에서 꾸물거렸으나 결국 굳어가는 껍데기를 깨지 못했다. 사고는 편협해졌으며 행동은 제한되었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순리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제 마음대로 살아갔던 시절이 있었나. 어차피 혼자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타인에 의해 세워진 규칙을 지키고 참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정신적, 육체적 자유를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다. 나를 억누르고 타인에게, 조직에게 맞춰가며 살았다. 회사 업무가 힘들다고 보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주변 사람들의 축하를 받을만한 성과를 이루었고 그에 따른 보상도 있었다. 그러나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갈 무렵 사업 방향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알았다. 임원들의 시장을 보는 좁은 시야와 엉뚱한 결정,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아첨꾼들, 또 그 아첨꾼들의 승진, 매번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소설 같은 보고서, 아픈 실체를 보고서에 담지 못하는 조직 문화 등이 점점 참기 힘들어져 갔다.
진심으로 상사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정말 자신의 상사를 좋아하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동하며 그의 자취를 롤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직원이 있다. 자신의 저 깊은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부류는 대개 눈치가 빠르고 달변이며 작문에 능하다. 최대한 화려하게 치장된 보고서 안에서 논점을 흐리고 자신의 치적을 부각하는 능력이 있다. 그 보고서에는 상사가 걱정할만한 정말 심각한 현실은 배제되고 미사여구가 동원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다.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을 알만도 한, 그런 류의 보고서 덕에 승진한 그의 상사는 보고 내용을 정말로 믿는 것인지, 믿는 척하는 것인지 보고를 받는 내내 희망고문에 차있다. 그렇게 사업은 시장을 잃어간다.
나의 쓴소리는 임원의 심기를 건드렸고 객관적으로 우수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낮은 평가를 받아야 했다. 나의 사업에 대한 애착과는 별개로 그 조직이 싫어졌다. 어느 순간 일상의 업무가 매우 짜증 나는 일로 바뀌었다. 나는 기로에 서 있었다. 참고 견디느냐, 아니면 그곳에서 빠져나오느냐. 내가 사업의 성장을 위해 그 조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모든 의사 결정과 사업 방향이 정답에서 멀어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사업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적자는 쌓여갔고 결국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희망퇴직 공지가 떴을 때 나는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회사에서 만류했으나 나는 결심을 굳혔다. 갈수록 오염되는 내 정신과 그로 인해 악화되어 가는 내 육체의 회복을 위해서 그곳을 빠져나오기로 했다. 아직 사회에서 나의 쓰임이 없지는 않다. 일은 굶지 않을 정도만 해도 족하다. 월급을 많이 주는 자리가 없을 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무작정 뛰쳐나왔다.
이제 더 이상 회사의 후광 속에 나를 감출 수 없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회사와 직급이 아니다. 오롯이 나는 나로 정의된다. 나의 걸어온 길, 습관, 생각, 가치관, 행동, 이 모든 것이 나를 정의하는 시절이 된다. 내가 회사의 부속품으로서 평가되는 시절에서 나 자신으로서 평가되는 시절로 바뀌었다. 굳이 어떤 껍데기로 나를 평가하고 싶은 사람이 여전히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기 싫어하고 겉만 탐하는 속물들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속물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기를 부단히 애써온 나였기에 나에게도 사람의 겉은 아무 의미가 없다.
다시 찾은 자유는 달콤했다. 사실이 감춰진 임원의 입맛에 맞는 소설 같은 보고서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침마다 아래에서 경치만 감상하던 뒷산을 오르며 그동안 한껏 이완되어 있던 다리 근육을 단련했다. 난생처음 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했다. 정신에 여유가 생기자 책장에 방치되었던 책들이 하나둘씩 책상 위로 올라왔다. 과거 지식인이 오랜 고민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세상에 대한 통찰과 나누고자 했던 지혜를 읽었다. 육체와 정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단련되었다.
지금의 나는 가장 행복하다. 가난했던 소년기, 치열했던 학창 시절, 내가 지워졌던 사회생활, 이 모든 경로에서 행복이란 단어는 없었다. 각 여정에는 무언가에 의해 강제되는 억압이 있었다. 이제 모든 억압으로부터 풀려난 나는 행복하다. 움켜쥔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새것을 잡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