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
엄마는 오랫동안 묶인 상태로 있었는지 몸에 힘이 없었고 재갈 물린 얼굴이 초췌해 보인다. 의자 뒤로 양팔이 묶여있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정상문을 노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엄마를 풀어줘!"
"워낙 대단한 능력을 가진 동생이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 치졸해도 이런 것 밖에 없다. 이미 겪어봐서 알겠지만 나는 사람이 죽고 사는 데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야. 살아가기 고통스러운 세상 좀 일찍 떠나게 해 주면 좋지, 안 그래?"
그가 휴대폰에 대고 손짓을 한번 하자 화면 속의 남자가 엄마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엄마가 깜짝 놀라서 깨어났고 그 남자는 엄마의 목을 칼날로 누르기 시작했다. 빨간 피가 엄마의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엄마는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며 울고 있었다.
"잠깐! 내가 뭐든 할게. 뭐든 할 테니 제발 그 칼 좀 치워줘."
나는 발악을 하듯 울부짖으며 정상문에게 애원했다.
"공장이 돌아가서는 안 돼. 그럼 내 계획이 다 틀어진단 말이야."
"알았어. 그렇게 할 테니 제발 저 칼 좀 치우라고 해줘."
정상문은 김반장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그의 반응을 살폈다. 나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김반장은 화난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대단히 괴로운 표정도 스치고 지나갔다. 정상문은 김반장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화면에 대고 손짓을 한 번 더 했다. 그러자 엄마의 목에 닿은 칼에 힘이 들어갔고 피가 더 많이 흐른다. 칼날이 조금만 더 들어가면 동맥이 끊어지게 생겼다. 정상문의 그간의 악랄함으로 봤을 때 엄마가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한 것이 분명했다. 정상문이 내 염력을 두려워하여 인질을 계속 살려는 두겠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에게 어떤 고통을 줄지 모를 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괴로워하던 김반장이 갑자기 괴성을 지르자 화면 속 남자가 엄마의 목에 댄 칼을 거두고 있다. 이어 그는 놀란 토끼눈을 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그 남자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옆에서 또 다른 남자가 뛰어들었다. 자신의 목을 찌른 남자가 다시 그 칼로 뛰어든 남자의 목을 한번 찔렀다 빼냈다. 두 남자는 철철 흐르는 피를 손으로 감싸고 바닥에 쓰러졌다. 엄마를 묶었던 밧줄이 스스로 끊어지고 입에 물렸던 재갈이 풀렸다. 모두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무실에 있는 정상문 일당을 포함해서 나까지도 당분간 말문이 막혔다. 그런 적막도 잠시, 정상문이 앉은 채로 공중에 떠올랐다. 그는 숨이 막히는지 캑캑거리며 발버둥 치고 있었다. 정상문은 서서히 창가를 향해 공중을 떠갔다. 정상문의 머리가 창문에 부딪히고 이내 유리가 깨졌다. 그의 머리는 깨어진 유리 조각에 상처가 났고 온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창틀에 아직 붙어있는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그의 몸을 그어댔다. 그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천천히 창문 바깥으로 이동했다. 정상문의 몸뚱이가 모두 건물 밖 허공에 떠있게 됐을 때 내가 외쳤다.
"아저씨, 안 돼요!"
김반장은 이미 이성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 그의 눈에서는 기이한 광채가 나왔고 머리카락은 모두 곤두서 있었다. 괴기스러운 웃음이 번진 얼굴은 마치 악마를 연상케 했다. 그가 갑자기 껄껄하며 웃자 정상문은 10층 높이에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졌다. 나는 재빨리 염력을 동원해 정상문이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다. 그래도 안전하게 땅에 내리게 할 수는 없으므로 약 2층 높이에서 떨어진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그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려 당분간 밖을 돌아다닐 수 없게 만들었다.
홀에 있던 정상문의 부하들 예닐곱이 일제히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이때만큼은 나도 염력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들의 모든 팔과 다리를 한꺼번에 부러뜨렸다. 그들은 비명과 신음을 섞어가며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옆을 보니 김반장이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다. 나는 김반장을 부축하여 바닥에서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그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김반장을 내 방에 눕히고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분명 원거리 염력을 사용해서 엄마를 구했다. 그것은 나도 쓸 수 없는 능력이다. 김반장이 어떻게 그런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반장은 저녁 무렵이 다 돼서야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제 방이에요."
그는 몸을 일으키며 머리가 아픈지 깊이 인상을 쓰고 이마를 만졌다.
"정상문은? 네 엄마는?"
"기억이 안 나세요? 반장님이 엄마를 구해주셨어요. 조금 전에 엄마와 통화했는데, 지금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에요. 정상문은... 당분간 아무 짓도 할 수 없을 거예요."
"내가 어떻게... 머리는 깨질 것 같고,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화면에서 네 엄마를 본 후로는... 전혀 기억이 없어."
그는 자신이 염력을 쓴 사실조차도 기억을 못 하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그가 어떤 경위로 능력을 갖게 되었는지 물어봤자 헛일임이 뻔했다. 아픈 사람을 추궁하는 것이 싫었고 시간을 두고 알아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반장은 내 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회사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누나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세상에, 정상문은 아주 나쁜 사람이구나. 툭하면 인질을 잡아 협박하고... 당해도 싸다 싸. 그럼 이제 공장은 정상적으로 돌릴 수 있는 거니?"
"몇 가지 법적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공장 운영은 가능해졌어요."
"김반장님이 보기보다 더 대단한 사람 같구나. 회사 운영을 맡겨도 되지 않을까?"
"글쎄요, 이제 회사는 조합이 운영하게 되었으니, 그건 조합에서 결정할 일이에요. 하지만 김반장님만큼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준 사람이 우리 조합에는 없어요. 이번 투자 유치와 채무 상환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 공장에 가보니 직원들이 마당에 모여 있었다. 그 사이에서 김반장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사무동 회의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회사 부도 관련해서 경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직원들은 모두 김반장의 말에 따라 회의실에 자리 잡고 앉았다. 김반장은 사람들 앞에 나서서 투자자를 구한 일과 은행에 돈을 지불한 일 등을 설명했고, 그래서 공장 가동이 가능해졌다는 보고를 끝으로 말을 마쳤다. 순간 직원들의 박수와 함성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서로 얼싸안고 우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에게는 이곳 일터가 생계의 근원이고 삶의 터전이다. 강제로 빼앗길 뻔했던 일터를 되찾은 기쁨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컸다. 그들은 하나씩 김반장의 손을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김반장님께 회사를 맡겨봅시다. 김반장님을 사장으로 추대합시다!"
그러자 군중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동의했다.
"옳소. 동의합니다."
"나도!"
"나두요."
"김반장님, 회사를 맡아주세요."
"우리 사장님이 돼 주세요."
이견이 있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이미 김반장의 능력을 확인했고 그가 자신들의 회사를 운영하고 키워갈 적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