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그냥 수학을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 당시 내 수학 성적은 수,우,미,양,가 중 "가"였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 계산이었다. 시험지 여기저기 계산 실수 투성이었다. 수학이 물리학의 언어라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 나에게 있어서 수학은 매우 버거운 짐이었다. 나의 어머니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걱정이 되셨던지 수학 선생님을 하시는 먼 친척 아저씨에게 나를 데려다주셨다. 그 선생님의 나에 대한 평가는 "수학 기초가 없다"였다. 또 하나 기억나는 나에 대한 평가는 "이대로 가면 수학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였다. 이러한 진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참 괴로웠고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못난 아들로서 죄송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못나서 수학을 못한 게 아니라 제대로 수학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중학교에 입학하여 엔트로피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나는 물리학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 물리학자를 꿈꾸며 동네 도서관에서 물리학 관련 도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지만 걸림돌이 있었다. 모든 물리학 이론과 법칙은 수식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 수식을 절실히 이해하고 싶었지만 수학 열등생인 나는 그 수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학 기초가 없는' 나로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대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무작정 수학 교과서를 펼쳤다. 집합과 명제, 방정식과 함수 등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내용들이 교과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교과서를 주욱 훑어보다가 어느 한 페이지에서 멈추었다. 삼각형과 사각형, 원과 구가 그려져있는 기하학 부분이었다. 깔끔하게 그려져 있는 도형들이 매우 이뻐보였다. 나는 어느새 도형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여러 도형의 성질을 이해하고 기본적인 공리(사람이 이성적으로 그렇다고 여기는 기본 원리. 예를 들어, 평행한 두 직선은 만나지 않는다와 같은)들을 기억하였다. 도형의 성질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문제들을 풀어가다가 하나의 문제에 부딪혔는데, 그것은 증명문제였다.
'원의 중심을 통과하는 직선을 긋고, 그 직선과 원의 호가 만나는 두 점, 그리고 원 호의 임의의 한 점을 연결한 삼각형은 직각삼각형이다.'
반나절을 꼬박 몰두하여 이 명제를 증명하는 방법을 찾아낸 나는 뛸듯이 기뻤다. 어려서부터 종이에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원을 그리고 그 원 위에 여러가지 직선들을 그어보았다. 삼각형도 만들어 보고, 사각형도 만들어 보고, 원 안에 선을 그어보고, 원 밖에도 선을 그어보고... 그려진 삼각형, 사각형의 각도를 표시해 놓고 그 각도 사이의 관계를 골똘히 고민하였다. 마침내 그 관계를 찾아내었다.
그림. 원의 지름을 한 변으로 하고 그 원에 내접한 삼각형은 직각삼각형이다.
이 그림은 매우 명확하고 아름다웠다. 원의 중심 O에서 C로 직선을 그으면 삼각형 ABC는 삼각형 AOC와 OBC로 나뉘어지고 선분 OA와 OB, 그리고 OC는 원의 반지름이므로 그 길이가 같다. 따라서 삼각형 AOC와 OBC는 이등변삼각형이고 이등변삼각형에서는 최소한 두 각이 같아야 한다. 각 OAC와 각 OCA는 같아야 하고 각 OBC와 각 OCB도 서로 같아야 한다. 명제에서 말하는 삼각형 ABC의 내각은 각 OAC와 같은 크기 두개, 각 OBC와 같은 크기 두개씩으로 구성된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므로 다음과 같은 식이 만들어진다.
2 x 각 OAC + 2 x 각 OBC = 180도
각 OAC + 각 OBC = 90도
각 ACB는 각 OAC 와 각 OBC의 합이므로 이 것은 90도이다. 따라서, 이 삼각형은 직각삼각형이다.
계산 실수 투성이의 수학 열등생이 처음으로 증명문제를 푼 것이다. 필자가 처음으로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 경험과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환희에 가까운 기쁨과 성취감, 그리고 자신감이 나를 휘감았다. 나는 증명을 해낸 뒤에도 풀이과정이 있는 해답서를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풀이는 논리적으로 명확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껏 수학공부를 하면서 해답서는 잘 보지 않았다. 해답서는 여러가지 풀이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 것이 절대로 유일무이한 답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의 즐거움은 정답을 맞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도형의 성질을 배우는 기하학은 필자가 가장 자신있어하는 분야가 되었다. 기하학에서 얻은 수학에 대한 자신감은 다른 영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해 보니 방정식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주어진 조건을 통하여 미지수를 알아내는 과정이 꼭 어렸을 때 동네 골목에서 많이 했던 도둑잡기 놀이 같았다. 방정식을 풀기위해서는 인수분해가 필수였고 방정식은 함수와도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이렇게 하나씩, 둘씩 공부를 해나가다 보니 어느새 수학 열등생에서 수학 우등생이 되어 있었다. 수학 경시대회에 나갈 정도는 아니어도 급우들의 질문을 제대로 설명해 줄 실력은 되었다.
초등 또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부모님들께 간곡히 부탁한다. 수학 학원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말아주십사 하는 요청이다. 수학 학원을 보내기만 하면 수학 실력이 좋아진다는 말을 믿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이 수학을 잘하고 흥미를 잃지 않기를 원한다면 혼자서 문제에 대해 고민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수학 학원에 가는 순간 문제 푸는 기계가 된다. 문제의 유형을 파악하고 강사의 풀이법을 암기한다. 이 문제가 무엇을 묻는 문제인지 먼저 파악해야하고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풀이해야 한다. 아이들은 매일 많은 양의 연습문제를 숙제로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자기만의 생각과 풀이법을 적용할 시간적 여유는 없다. 사고할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해설서의 모법답안을 끼고 산다. 이렇게 공부하여서는 절대로 수학을 잘할 수 없고 즐길 수 없다.
또, 수학을 공부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어야 한다. 수학을 배우는 목적은 즐기기 위해서라는 동기 부여이다. 수학이 지겨운 과목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거기서 끝이다. 중학교 이후 필자는 단 한번도 수학을 지겹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수학은 재미있는 것, 즐기는 것이었다. 하나의 어려운 문제를 풀기위해 하루 종일을 고민한 적도 있다. 물론, 끝까지 풀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으나 한가지 문제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수학 공부가 즐거워지면 다른 과목의 성적도 덩달아 오른다. 수학적 고민을 하는 과정은 사실에 근거하여 원인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과 같다. 이러한 공부법은 국어, 영어, 과학, 역사 등 모든 과목에 적용될 수 있다. 무조건적인 암기에서 벗어나 비판적 시각으로 문제를 대하는 능력이 생긴다. 이유가 뭘까를 항상 고민하게 된다. 이 능력이 학문을 하는 능력이다.
수학은 인간의 사고를 논리적으로 발전시켜주며 중요한 순간에 이성적 판단을 할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이 수학 교육의 본질이다. 시험문제를 몇개 더 풀 수 있는가가 교육의 목표가 아니다. 현 입시제도 하에서 고3 수험생이 대학을 가고 싶으면 문제 푸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은 맞다. 동의하기는 어려우나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비효율적인 학습은 1년으로 족하다. 그 이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약 10년동안은 아이들이 수학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고3 지옥훈련 기간에도 수학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