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라는 언어에서 단어는 숫자 또는 문자이다. 숫자를 이해하는 것은 수학 공부의 첫 관문이다. 숫자에는 자연수와 정수, 유리수와 무리수, 실수와 허수 등이 있다. 언어에 있어서도 사람들 간 소통을 위해 새로운 단어가 탄생하고 소멸된다. 수학도 마찬가지로 필요에 의해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난다. 처음에는 물건의 개수를 세기 위해 1, 2, 3 등의 자연수가 만들어졌고, 하나의 물건을 쪼개어 나눌 필요가 생겼을 때 0.5 또는 1/2 등의 소수와 분수가 탄생하였다. 수학이 점점 더 발전하여 정사각형의 넓이를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제곱의 개념이 생겨나고, 어떤 수가 같은 수의 제곱으로 만들어진 상황을 가정하여 제곱근이 만들어지고 무리수의 개념이 태어났다. 더 나아가 미지수를 포함하는 방정식을 만들 줄 알게 되면서 숫자 대신 문자를 단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 문자의 사용은 수학 이론의 일반화를 가능하게 하였고, 수학이 단순한 문제 풀이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수의 개념들을 정확히 모르고서는 수학을 잘할 수가 없다. 단어의 뜻을 잘 모르고서는 독해와 말하기를 잘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수학 공부는 이러한 단어의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필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수학을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구x 수학을 시킨 적이 있다. 꽤 유명한 학습지였다. 학교에서 배우는 양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는지 학습지까지 시키면서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던 부모의 마음이었다. 학교에서 놓치고 지나친 수학적 단어와 문법의 개념을 학습지를 통해 깨우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 후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학습지의 내용을 보고 나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덧셈 뺄셈과 곱셈 나눗셈 등 사칙연산을 이용하여 계산하는 문제들이 한 페이지 안에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한 페이지 당 약 스무 문제가 적혀있었고, 그런 문제들을 하루에 5 페이지씩 풀어야 하는 게 목표였다. 숫자만 약간씩 바뀌어 반복되는 100개의 사칙연산 문제를 매일 푸는 것이 숙제였다. 나는 그 문제들을 보자마자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는 당장 학습지를 끊었다.
이 학습지는 계산하는 기계를 양성하는 게 목표였다. 수학의 재미 따위는 하찮고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 아이가 이런 고된 훈련을 통해 육체적으로 힘들어하는 것보다, 수학에 흥미를 잃을까 봐 그게 훨씬 두려웠다. 이 학습지를 꾸준히 참고 해낸다면, 당장의 시험 성적은 오를 수 있을 것이나 수학의 아름다움은 결코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당장의 성적이 좋지 않아도 나는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이런 학대를 이어갈 수 없었다. 이후로도 나는 내 아이에게 절대로 수학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것을 강요한 적이 없다. 그 아이의 중고등학교 수학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지금 내 아이는 외국 유명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다. 나는 경제학에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이 동원되는지 처음 알았다. 심지어 공대에서 배우는 공학수학만큼 그 수준이 높았다. 그 아이는 벡터, 행렬을 포함한 선형대수학과 미적분은 물론 통계 수학까지 깊이 공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학점을 짜게 주기로 유명한 학교임에도 모두 A를 받고 있었다. 물론 시험기간에는 초인적인 힘으로 여러 날 밤샘을 하곤 했으나, 그건 백 퍼센트 자발적인 노력이었다. 누구도 그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수학이 재미있다고 하였다. 수학의 재미를 대학교에 와서 알았다고 했다. 모든 경제 모델이 수학으로 명쾌하게 설명되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고 하였다. 이제 그 아이는 공대를 졸업한 필자보다 수학을 더 잘한다. 만약 초등학교 시절에 구x 수학을 끊지 않고 계속했다면, 초등학교 수학 성적은 좋았을지 모르나, 내 아이는 지금 수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학 교육은 수포자 양성 교육이다. 구x 수학 학습지가 그러한 역겨운 문제들을 아이들이 풀게 하는 이유는 우리 학교의 평가 기준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이와 학부모의 지상 최대 목표이기 때문에 학습지가 그렇게 구성된 것이다.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연습을 해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많은 문제들을 시간 안에 풀어낼 수 있다. 아이들이 수학에 흥미를 잃건 말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물론 어려서부터 숫자를 좋아하고 특별히 수학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도 있다. 소위 영재나 천재들에 그런 아이들이 속할 것이다. 그런 아이들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선생님의 도움 없이 혼자서 수학을 공부해 나갈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아이들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긴 호흡과 인내로 기다려 주어야만 수학을 잘할 수 있다. 수학의 단어와 문법을 곱씹고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때 그 아이들은 비로소 수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수식을 암기하고, 문제 푸는 방식을 외우고, 이 것들을 무한 반복하게 하는 우리의 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수학을 즐길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소수의 영재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학을 재미있게 느끼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필자와 같은 범인도 수학을 즐길 권리가 있고,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어려운 미분방정식을 이해하거나 풀 수 없다고 하여 수학을 즐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간단한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현상들이 있고, 우리가 수학의 본질을 제대로 배우고 익혔다면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외국 사람과 간단한 인사말로 서로 대화하는 단계에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는 친구로 발전하는 과정과 같이 매우 쉬운 수학을 통하여 충분히 재미를 느껴본 다음 천천히 어려운 수학으로 나아가는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간단한 수학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었고, 너무 쉬워 흥미가 없어지려고 할 때, 한 발씩, 한 발씩 조금 더 어려운 수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미분방정식을 이해하고 푸는 날도 올 수 있다.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수학을 배우는 데 있어서 독이다. 초등학생들이 중학 수학을 미리 공부하거나, 중학교 학생들이 고교 과정을 미리 공부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필자의 의견은 몇몇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을 수포자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의미도 모르고 재미도 모르면서 문제지의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해서 그 학생이 수학을 잘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학생은 수학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제를 잘 푸는 것이다. 그 학생이 수학을 잘 공부했는지, 제대로 배웠는지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면 차라리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해 보라고 시키면 된다. 이 친구가 수학 문제지에 있는 그 어려운 부분적분을 척척 풀어내는 것은 그가 수학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런 유형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학 명제의 증명은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고, 그걸 찾아갈 줄 아는 힘이 진정한 수학의 힘이다.
다음 글부터는 수학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 하는 방법에 대해 필자의 경험을 곁들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