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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가 변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빛의 속도가 일정해야 하는 이유

by Neutron

내가 기차를 타고 가면서 앞으로 돌을 던지면 기차 밖에 서 있는 사람은 내가 던진 돌의 속도에 기차의 속도를 더한 아주 빠른 돌의 속도를 느끼게 된다. 지하철역의 무빙워크를 걸어가는 내 속도는 무빙워크 밖에 있는 사람이 보면 훨씬 더 빨라 보인다. 그럼 빛도 그렇게 될까?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빛만큼은 이러한 속도의 합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빛의 속도는 어디서 누가 어떤 식으로 측정하든 일정한 상수이다. (빛이 통과하는 물질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여기서 논할 대상은 아니다)


우리는 빛이 속도의 합법칙을 따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빛이 속도의 합법칙을 따른다면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이다. 여러 가지 가상 실험을 통하여 이에 대해 알아보자.


빛은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들 중에서 정보를 가장 빨리 전달해 줄 수 있는 매개체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르지 않다. 그것이 빛이 특별한 이유이다. 정보를 전달받는 것은 관측하는 행위에 의해 이루어진다.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바나나의 색깔 정보를 얻으려면 거기 있는 바나나를 눈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저 바나나가 노란색인지 초록색인지 알 수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빛보다 빨리 바나나의 색깔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 줄 수 없기 때문에 빛을 이용한 관측은 가장 안전한 정보 전달 수단이 된다.


만일 빛보다 빠른 그 무엇이 있어서 빛에 앞서 우리에게 그 정보를 전달해 줄 수 있다고 하자. 빛보다 빠른 그 무엇을 '초빛'이라고 이름 지으면 이 초빛이 우리에게 전달해 준 정보는 바나나는 노랗다였다. 그리고 그 바나나는 익기 전에 초록색을 띠고 있었는데 빛이 이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해 줌으로써 우리는 바나나가 초록인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하자.


바나나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멀어서 동시에 바나나로부터 출발한 빛과 초빛이 우리에게 도착하는 시간차이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하자. 초빛이 노란 바나나의 정보를 가지고 우리에게 도착하는 시각은 한참 전에 바나나가 초록색일 때 바나나에 반사된 일반적인 빛이 우리에게 도착하는 시각보다 빠르다. 초록 바나나가 익어서 노랗게 되는 것이 아니라, 노란 바나나가 초록으로 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정보를 얻은 우리는 그동안 알던 상식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혼란스러워진다. 두 정보 중에 어느 것을 믿어야 할지 헷갈리게 된다. 또는 바나나까지의 거리와 초빛과 빛의 속도 차이에 따라 바나나가 초록이라는 정보와 노랗다는 정보가 동시에 우리에게 도달할 수도 있다. 다행히 '초빛'이라는 존재가 없으므로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관측한다'라고 하는 것은 '본다'라는 말과 같다. 바나나를 본다는 것은 빛이 바나나 표면에 반사되어 우리 눈으로 들어오는 과정이다. 관측하는 과정에서 속도가 변하는 그 무엇으로 정보를 전달받는다면 이 세상은 아주 이상하게 흘러가게 된다. 대상에서 시간적으로 먼저 출발한 정보 전달 매체는 나중에 출발한 그것보다 나에게 먼저 도착해야 한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속도의 합법칙을 따른다고 하면 그 자체가 빛의 속도보다 빠른 '초빛'이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빛의 속도는 진공에서 약 30만 km/s인데, 만약 속도의 합법칙이 적용된다면 5만 km/s로 날고 있는 우주선에서 앞으로 발사된 빛의 속도는 35만 km/s가 될 것이다. 이때의 빛이 '초빛'이 되며 초빛의 존재만으로 동시에 파랗고 노란 바나나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빛의 속도가 30만 km/s로 일정하고 이 보다 빠른 그 어떤 것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우리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은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인과법칙이란 어떤 사건의 원인은 그 사건의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선행한다는 법칙이다. 우리의 경험상 아주 당연한 법칙이다. 인과법칙이 깨지는 순간을 목격했다면 우리는 이 것을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여기게 된다. 인과법칙을 인과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과율이 깨지는 것처럼 보이는 대표적인 사례가 소리와 엮인 현상이다. 박수를 치고 나서 짝 소리가 나야 원인과 결과가 제대로 된 순서이다. 바로 코 앞에서 나는 박수 소리는 그렇다. 실제로는 빛의 속도가 소리의 속도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에 손바닥이 부딪히는 사건이 박수 소리보다 먼저 관측된다. 하지만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동시에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만약 넓은 운동장 끝에서 친구가 박수를 치고 있다면 그 소리는 손바닥이 마주친 것이 보이고 나서 조금 후에 우리 귀에 들릴 것이다.


이렇게 인과율이 깨져 보이는 이유는 빛과 소리라는 속도가 서로 다른 정보 전달매체를 동시에 이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리에 의존해서만 손뼉 치는 사건을 관측한다면 사건과 관측 사이에 너무 긴 시간 간격(interval)이 생긴다. 이 시간 간격은 현상에 대한 정보를 왜곡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를 찾아야 한다. 그게 빛이다. 즉 소리는 빛에 비하여 안전한 정보 전달 매체가 아니다.


사실 이 경우에는 인과율이 깨지지 않았다. 속뼉을 치는 사건이 소리가 들리는 사건보다 분명 앞서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보다 소리가 들리는 시간 간격이 조금 더 길 뿐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현상은 아니다. 소리가 빛보다 빠르지 않기 때문에 인과율이 지켜지는 것이다. 만약 소리가 빛보다 더 빠르다면 박수 소리다 들린 다음에 손바닥이 부딪히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겠지만...


빛은 우주에서 가장 빠르지만, 그렇다고 빛의 속도가 무한히 빠른 것은 아니다. 빛은 태양에서 출발하여 지구에 약 8분 만에 도달한다.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은 약 8분 전의 모습이다. 더 멀리 가면, 태양 외에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인 알파 센터우리에서 출발한 빛은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약 4년이 걸린다. 이 또한 4년 전 센터우리 별을 관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우주에서 빛보다 더 빨리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보다 더 빠른 정보전달 수단이 없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빛보다 빠른 그 무엇이 있다면 즉, 속도 합법칙에 따라 빛의 속도가 증가한다면 총을 쏘기도 전에 총알이 튀어나오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림에서 처럼, 빛의 속도에 총알의 속도가 더해져 총을 쏜 사람의 행위보다 총알이 먼저 보일지 모른다. 이는 인과율을 완벽히 위반한 사례가 되는 것이다. 총알이 총을 쏜 후에 튀어나오는 인과율을 지키기 위해서 빛은 항상 일정한 속도를 가져야 한다. 내 동작이 아무리 재빨라도 총을 쏘기 전에 먼저 출발한 총알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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