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다. 그 당시 V라는 TV 시리즈를 보면서 어린 나이에 많은 걱정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지구에 외계 우주선들이 날아왔고 여기에 타고 있던 외계인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파충류였다. 인간을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해 지구를 찾았고, 주인공 인간들이 이 외계인들에 대항하고 싸웠다. 외계인을 물리치기 위해 수많은 인간의 희생이 뒤따랐던 것에 슬퍼했고 생쥐를 산채로 꿀꺽하는 외계인의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었다.
아직도 주변에는 외계인과 지구인 간의 만남을 기대하거나 다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우주에 별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외계인이 존재할 확률이 높고 지구인들보다 훨씬 더 발달된 과학 문명을 앞세워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날아올 수 있다고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히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고 그중에는 인간들처럼 지적인 능력을 갖추고 심지어는 지구보다 더 발달된 문명을 누리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런 외계인과 인간의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구에서 태어나 발전된 물리학은 전 우주에 걸쳐 적용되는 학문이다. 별들의 움직임과 우주의 팽창 등 인류가 관측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우주 현상은 물리학 법칙을 따른다. 별의 탄생과 소멸, 심지어 우주의 탄생까지도 물리학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물리학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는 외계 생명체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그들이 눈부신 과학 문명을 이루고 있다면 그 기저에는 분명 우리의 것과 같은 물리학이 있을 것이다. 상대성이론이 있을 것이고, 전자기파 방정식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물리학 하에서는 어떤 것도 빛보다 빠르지 않고 빛의 속도 자체도 무한히 빠르지 않다. 이 법칙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외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이런 물리법칙 때문에 우리가 서로 만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부터 우리는 상상속에서 지구를 떠나 외계문명을 찾아 나설 것이다. 일단 태양계 안에는 인간 외에 지적 생명체가 없는 듯하다. 인류가 우주로 전파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보이는 신호는 없다. 외계 문명이 있어서 인류와 동등 이상의 문명을 이루고 있다면 분명히 우리가 보낸 신호를 해독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답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인류보다 덜 발달된 문명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회신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이렇게 되면 그들과 우리의 만남은 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우리가 외계인과 만나기 위해서는 외계인이 우리보다 훨씬 더 발달된 과학문명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를 방문해야지 우리가 그들을 방문할 기술은 아직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태양계 끝 해왕성까지 전파가 가는 데는 4시간 남짓 걸린다. 하루 만에 몇 번씩 교신이 가능한 거리이다. 과거 몇십 년 동안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아직까지 우리가 회신을 받지 못한 걸 보면 태양계 내에는 외계인이 없는 것 같다.
태양계를 벗어나 프록시마 센터우리 항성계로 가보자. 프록시마 센터우리는 지구에서 약 4광년 떨어져 있다. 이 별이 태양을 제외하고 지구와 가장 가까운 항성이다. 프록시마 센터우리를 공전하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어서 문명인들이 살고 있다고 하자. 이곳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항성계임에도 불구하고 신호를 보내는데 4년, 받는 데 4년으로 한 번 교신을 하는 데 8년의 시간이 걸린다. "안녕, 우리는 지구인이야. 너희는 누구니?"를 보내는데 4년, "안녕, 우리는 A행성 사람들이야."의 신호를 받는데 4년, 도합 8년 동안 한 번의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다. "뭐 먹고 사니? 너흰 어떻게 생겼니?"등의 질문과 답을 하는 동안 몇 십년이 훌쩍 지날 것이다.
서로 만나는 일은 더욱 힘들다. A행성 외계인은 인류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을 이루고 있어서 아주 빠른 비행선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 비행선이 빛의 속도로 날아갈 때 지구에 4년 만에 도착한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에 의해 우주의 어떤 물질, 입자도 빛의 속도에 도달하지 못한다. 빛의 속도에 근접하면 질량이 무한대로 늘어나서 무한대의 에너지를 투입해야 조금이라도 더 가속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A 행성 외계인은 발달된 과학 기술을 이용해 광속의 50%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선을 제작할 수 있었다고 하자. 광속의 50%는 아주,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이다. 15만 km/s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둘레를 3바퀴 정도 돌 수 있는 속도이다. 이 속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동한다고 했을 때 A 행성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빛이 이동하는 시간보다 두 배 걸리므로 8년 정도이다.
그런데, A 행성 외계인의 신체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와 살로 되어 있다면 사정은 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비행선이 가속될 때 몸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6G 정도의 가속도를 느끼면 기절한다. 그래서 3G 이하의 가속도가 안전하다. 1G는 중력가속도로 9.8m/s^2이다. A 행성 외계인의 몸이 인간의 신체보다 더 단단하여 6G까지는 견딜 수 있다고 하더라도 6G로 15만 km/s 속도까지 가속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래와 같이 계산된다.
a = v / t (가속도 = 속도 / 시간)
t = v / a (시간 = 속도 / 가속도)
= (150,000,000 m/s) / (6 x 9.8 m/s^2)
= 2,551,020.4 s
= 708 h
= 29.5 days
비행선 가속에만 한 달 정도 걸린다. 3G로 가속하면 두 달 걸린다. 뭐, 총 비행시간 8년에 비하면 아주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문제는 8년 넘게 우주여행을 해서 지구를 방문할 외계인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과 다르게 긴 수명을 가지고 있어 인생에 있어서 8년 정도는 희생할 수 있다고 하면 그렇다고 수긍할 수도 있겠으나, 지구인과 만난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또 8년을 넘게 허비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성이론에 의해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외계인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므로, 외계인이 지구 방문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자기보다 더 늙어있는 자식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A 행성 외계인이라면 지구 방문은 정중히 거절하고 4년에 한 번씩 지구인과 카톡을 하며 안부를 묻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지구와 가장 가까운 항성계가 이모양이니 그다음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은 말할 것도 없다. 5광년, 6광년 거리의 외계인들은 지구 방문 시 왕복 20년 이상을 소모해야 한다. 사실 이렇게 가까운 거리(10광년 이내)에 존재하는 별의 개수는 그리 많지 않다. 지구에서 100광년 이상으로 관측 반경을 넓혀놔야 정말 문명이 발달된 외계인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에 사는 외계인이 광속의 50% 속도로 날아서 지구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200년이 넘는다.
우주는 너무 넓다.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안드로메다 은하는 지구에서 약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250만 년 가야 도달하는 거리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지구가 속해 있는 우리 은하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사례로 비춰볼 때 여기 사는 외계인이 지구에 놀러 올 확률은 0이다.
안드로메다 은하를 포함하여 지금까지 관측된 은하는 천억 개가 넘는다. 한 개의 은하 안에 또 천억 개의 별들이 있고, 또 천억 개의 별들은 각자의 행성들을 여러 개씩 가지고 있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행성들 중에 지구의 환경과 거의 흡사한 곳이 없다면 말이 안 된다. 분명 외계 생명체는 존재한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주 어딘가에 문명이 발달된 외계 사회가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에 사는 외계인이 지구인과 만날 가능성은 없다. 온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학 법칙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