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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Simultaneity)란 존재할까

by Neutron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당겨!


학교 운동장에서 줄다리기를 할 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는 '셋'의 소리에 맞춰 동시에 줄을 당긴다. 줄다리기에서는 '동시'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하다. 여러 사람의 힘을 한 데 모으려면 동시에 힘을 줘야 한다. 만약 조금의 시간차이가 나도 힘은 분산되고 최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영차, 영차' 구령에 맞춰 동시에 줄을 당긴다. 덩치들이 비슷하다면 동시에 힘을 쓰는 쪽이 줄다리기에서 이긴다.


레이저 포인터의 버튼을 누르는 동시에 스크린에 레이저 빛이 보인다. 전등 스위치를 켜는 동시에 방 안이 환해진다. TV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누르면 동시에 TV가 켜진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수많은 '동시'를 경험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 동시라는 것이 정말 존재할까?


동시는 동일 시각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시간을 초 단위로만 나누면 레이저 포인터의 버튼을 누르는 일과 레이저 빛이 스크린에 도달하는 일이 동시에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초를 쪼개고 쪼개어 ms(밀리 초), micro-second(마이크로 초) 단위에서 보면 이 두 사건은 동시가 아니다. 레이저 빛의 속도가 무한히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레이저 빛은 1초에 30만 km를 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작업을 해도 그 이상은 가지 못한다.


그래도 동시는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주 정밀한 실험을 해 본다. 동시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떨어진 두 위치에 있는 시계를 맞춰놔야 한다. 내 시계가 정확히 1시 정각을 가리킬 때 나와 10m 떨어진 내 친구의 시계를 정확히 1시 정각에 맞추는 작업을 한다. 내 시계는 1시 정각에 이미 맞춰져 있고 시계는 정지해 있다. 10m 떨어진 곳의 친구의 시계가 12시 59분을 지나 1시 정각으로 가고 있는데, 친구의 시계가 1시 정각을 가리키는 순간 나는 내 시계를 작동시킬 것이다. 그러면 두 시계가 완벽히 맞게 되는 것 아닌가.


친구의 시계가 1시 정각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친구의 시계를 보는 것이다. 본다는 것은 그 시계에 반사된 빛을 내 눈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빛의 속도가 무한하지 않으므로 내가 그 친구의 시계를 본 사건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이다. 이런 방법으로는 두 시계를 정확히 맞출 수 없다.


이번에는 인공위성에서 GPS 신호를 받아 두 시계를 맞춰보자. 하나의 인공위성에서 보낸 신호는 나와 내 친구 시계에 정확히 동시에 도달한다고 가정하자. 그 신호에 맞춰 두 시계를 세팅하면 동시에 동일한 시각을 가리키는 두 시계를 가질 수 있다. 자, 우리는 이제 정확히 동일한 시각을 가리키는 두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동시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세 개의 시계를 맞춰 놓는다.


이제 세 개의 시계 중 두 개를 아주 긴 기차 맨 앞과 끝에 각각 설치한다. 나머지 하나는 기차의 정 중앙에 설치한다. 나는 달리는 기차 밖에 서 있고 기차 안에서 기차와 함께 이동하는 내 친구 세 명에게 부탁한다. 기차 맨 앞과 뒤에 있는 친구들에게 번개가 칠 때의 시각을 각각의 시계로 측정하여 기록해 달라고 한다. 또, 가운데 친구에게도 기차의 앞과 끝에 설치된 시계 위치에 번개가 도달했을 때의 시각을 자신의 시계로 기록해 달라고 부탁한다.


공교롭게도 기차가 내 앞을 지나는 순간 번개가 쳤다. 내가 보기에 번개는 동시에 기차의 맨 앞과 끝에 도달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기차의 맨 앞 친구와 맨 끝 친구가 기록해 놓은 시각이 동일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기차 중앙에 타고 있던 친구이다. 이 친구가 기록해 놓은 시각은 기차 앞쪽 번개가 먼저이고 기차 뒤쪽 번개가 나중이었다. 기차 중앙에 있던 친구에게는 이 번개가 동시에 치지 않았다.


기차 중앙에 있던 친구의 입장에서 보면 기차 앞쪽 번개 빛은 뒤쪽 번개 빛보다 더 빨리 눈에 도착한다. 기차가 앞으로 이동하고 있으므로 번개가 친 사건이 일어난 위치의 앞쪽 거리는 짧아지고, 뒤쪽 거리는 늘어나기 때문이다. 앞에서 오는 빛과 뒤에서 오는 빛의 속도는 동일하므로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빛이 더 먼저 도착하는 것이다. 기차의 양 끝에서 동일 속도로 쏘아진 빛 이외의 어떤 물체도 기차 중앙에 동시에 도착한다. 속도의 합법칙이 적용되는 것이고,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는 관성계 내에서는 정지한 것과 같은 물리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오직 빛만이 이상하게 운동하는 것이다.


내가 본 번개가 친 사건은 분명히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움직이고 있는 기차 중앙에 타고 있는 친구에게는 동시가 아니었다.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자연의 법칙은 동시성을 파괴해 버렸다. 동시(Simultaneity)란 상대적인 개념이 되었다. 누구에게는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다른 누구에게는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이를 '동시의 상대성'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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