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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힘들다

by Neutron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의 첫머리이다. 이 의미를 깊이 새겨본 사림이 있는가? 국민이 주인이라는 말은 민주주의 이념의 핵심이다. 너와 내가 국민이고, 그와 그들이 국민이다. 우리 모두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말이다. 대통령이 이 나라의 주인인가? 그래서 5년마다 주인이 바뀌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가?


민주공화국의 반대말은 왕정국가이다. 왕정국가에서는 왕이 나라의 주인이다. 백성들은 왕을 주인으로 섬기는 하인들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모든 결정은 왕이 내린다. 백성들은 왕의 결정에 따라야 하고 만약 그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반역죄로 처벌받는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왕정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다. 이곳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다. 대통령은 국민의 대리인이고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왕정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있다. 대통령을 왕처럼 모시고 그 권력을 숭배한다. 그런데 자신은 민주주의자란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자칭 민주시민이라고 한다. 내가 왜 민주주의를 모르냐, 학교에서 배웠다. 참정권을 행사하여 내 손으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다. 그래서 나는 민주시민이다. 이렇게 항변한다.


물론 참정권은 민주주의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투표장에 나간다고 민주시민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하는 게 아니다.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 못난 정치인에게 표를 준다고 해서 법적으로 잘못된 점은 없다. 그러나 그에 따른 모든 결과는 오롯이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유권자가 정치인을 제대로 알아보고 좋은 정치인에게 투표하면 그 이득은 나에게 돌아온다. 삶이 힘들다고 푸념하지 말자.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내 선택에 내가 책임져야 한다.


정치는 국가의 재화를 분배하는 일이다. 국가 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두고 각 정당들은 피 터지게 싸운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변인들이다. 어떤 정당은 대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고 서민의 근로소득세를 높이고자 한다. 또 어떤 정당은 반대의 정책을 추구한다. 어떤 정당은 국민들을 사회의 무한 경쟁 속으로 던져버리고 나 몰라라 한다. 또 어떤 정당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강자를 견제한다. 그럼 우리 같은 서민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어야 하는가?


당연히 약자를 감싸는 정책을 하는 정당을 밀어줘야 한다. 대한민국의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50% 정도 된다. 상위 10%의 자산은 전체 자산의 60%에 육박한다. 반면에 하위 50%의 자산은 전체의 5%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이러한 부의 편중은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경제력이 부를 늘인다는 것이다.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부는 부를 증가시키고 가난은 가난을 가속화시킨다. 요즘에는 계층사다리라는 말도 사라져 가고 있다. 비싼 사교육을 받을수록 명문대 입학 확률이 높아진다. 로스쿨은 명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예전처럼 절에 들어가 몇 년 청춘을 불사르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 고학을 해서 사법고시를 패스하면 판사나 검사가 되던 시절도 지났다. 경제력만이 좋은 대학에 보내주며 경제 기득권이 될 기회를 준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50%가 넘는 경제적 약자들이 경제적 강자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사는 게 힘들다고 한다.


우리는 아직 민주시민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해 주기를 앉아서 기다린다. 앉아서 정치인 욕만 한다. 제일 한심스러운 사람이 바로 앉아서 정치인들 욕만 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주인이라면 내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소중한 참정권을 아무렇게나 소비한다. 나의 소중한 한 표를 줄 정치인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공부하고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노력도 하지 않고 거짓말에 속고 겉모습에 속는다. 프로퍼간다에 속고 속아 잘못된 선택을 한 후 후회해도 소용없다. 내 실수를 되돌리려면 4년~5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사이 우리 삶은 더 어려워진다.


우리가 주인이라면 주인이 가져야 할 책임이 있다. 국회에서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인들을 선택한 것도 우리이고 자기 살겠다고 멀쩡한 날에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선택한 것도 우리이다.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웠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고 타협점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거짓에 속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 그 진실이 진짜임을 알리기 위해 방대한 정보를 모으는 노력, 어떠한 사실도 비판 없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노력, 그 노력들을 게을리한 잘못도 우리에게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노력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노력이 없이는 지켜낼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투표장에서 표나 던졌다고 민주시민의 도리를 다했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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