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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는 무엇인가

by Neutron

보수는 무엇이고 또 진보는 무엇인가? 우리는 자칭, 타칭 빨간색 당을 보수라고 부르고 파란색 당을 진보라고 부르고 있다. 과연 이것이 맞는 구분인가? 그럼 정말로 빨간색 당이 보수적이고 파란색 당이 진보적인가?


보수와 진보의 뜻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시점이 언제인지 알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는 199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럼 그전에는 정치 세력을 어떻게 구분하였을까?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로 대한민국을 장악하였고 그 후 오랜 기간 독재 체제를 이어갔다. 이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 시절이 경제 성장의 기초를 다진 시기여서 공과 과를 함께 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만 보면 박정희는 성공한 내란의 독재자이다. 박정희의 유신정권은 군 내부의 정치 세력을 키웠고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장기간에 걸친 군사 독재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은 쓰이지 않았다. 독재 대 반독재 즉, 군사독재와 민주 세력의 대결 양상이었다.


당시 유력한 야당 정치인은 소위 3김으로 불리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었다. 반독재 민주세력을 대표하는 김대중, 김영삼과 유신정권을 계승한 김종필의 3파전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에 항복한 노태우의 6.29 선언으로 드디어 꿈에 그리던 대통령 직선제를 다시 쟁취한 민중들이 한껏 들떠있을 때였다. 군부 독재의 종말을 보는가 했지만 결국 전두환 측근 육군 대장 출신 노태우가 당선되면서 군사 정권은 연장되었다.


5년 후 김대중의 지지율이 치솟을 때쯤 김영삼은 당시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 세력과 야합하여 거대 정당을 만들었고, 1992년 김대중 후보를 8.14% 차이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거대 정당은 명분이 필요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부 내란 수괴들의 정치적 법적 사면을 갈망하는 마음과 민주세력을 배반한 김영삼이라는 한 정치인의 야욕이 빚어낸 야합이었지만 겉으로는 그럴듯한 이유를 대야 했다. 이때 조선일보 등 언론에서 만들어낸 말이 '보수 대연합'이었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보수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다.


언론은 보수의 반대는 진보라고 하며 당시 민주세력의 대표 김대중을 진보라는 프레임에 가두었다. 김대중 자신은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언론은 그렇게 불렀고 그 이미지는 고착화되었다. 그렇게 국민들에게 최면을 걸어 군사 쿠데타 세력은 보수, 반독재 민주세력은 진보라는 양분법을 고착화시켰다.


언론의 그다음 단계의 공작은 보수를 찬양하고 진보에 빨간 칠을 하는 것이었다. 민족의 분단을 악용하여 과거 박정희가 썼던 수법을 그대로 도입했으며 그 수법은 잘 먹혔다. 경상도에 계시는 7~80대 어르신들은 아직도 김대중을 빨갱이로 여긴다. 대한민국에서 공산당, 빨갱이는 그 어느 대상보다 무섭고 나쁜 이미지였다. 언론은 보수가 이러한 빨갱이를 척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 진보를 좌파, 보수를 우파로 여기게끔 하는 프레임도 이때 만들어졌다.


김대중, 노무현 등 민주세력이 만들어낸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빨갱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만큼 언론은 절실히 노력했고 그 성과를 거두었다.


보수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헌법을 수호하고 법을 잘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라 일컬어지는 박정희는 헌법을 무시하고 군사 쿠데타를 자행했다. 노동법을 무시하고 노동자를 착취했다. 인권을 무시하고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법살인했다. 보수가 극성적으로 변하면 극우가 되고 파시스트가 된다. 대표적인 인물이 히틀러인데 그는 게르만족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보수의 근본에는 사대주의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소위 보수 집회에는 항상 성조기가 휘날린다. 심지어 일장기도 보인다. 미국과 일본의 국익이 최우선이고 그다음에 대한민국의 이익이 있다. 이들은 보수가 아니다.


빨간색 당은 보수의 적통을 이어받았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보수는 들여다보면 진짜 보수가 아니듯이 지금의 빨간색 당은 보수가 아니다. 심지어 헌법을 어긴 친위 쿠데타로 법정에 서는 대통령을 또 한 번 배출했다. 이들은 반칙과 불법을 자행하는 사대주의자들의 모임이다. 진짜 보수는 헌법을 수호하고자 쿠데타를 막아선 파란색 당이다. 이제 진보와 보수의 영역을 재정의할 때가 되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절대로 진보주의자가 아니다. 나 스스로 철저히 보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존의 가치가 허물어지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보수주의자로서 모든 사람들이 기존 질서를 잘 지키는 상식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제 헌법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세력을 보수라고 불러주자. 내란 수괴를 감싸고도는 반헌법 집단을 정치판에서 쫓아내자.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그리는 진짜 진보적인 정당에 힘을 실어주자. 그래야 국회에서 건전한 다툼과 생산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아직도 빨간색 당이 보수이고 파란색 당이 진보로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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