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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이 죽 끓듯 하는 영임 씨!

#퇴직 #자격증 #수어 #바리스타 #미용 #타로 #오디오북

by 노영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이제는 아니다.

두 주먹 불끈 쥔 채 머리띠 두르고 도전할 만큼 뜨거운 열정이 남아있지 않다. 36.5도. 미지근할지 모르지만 적당히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정도다. 남들 말 한마디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 세파에 출렁이는 돛단배이고 싶지 않다. 그냥 하던 대로,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살자.

나이만큼 사람 기죽이는 게 또 있을까? 나이와 자존감은 반비례하듯 갈수록 위기소침해진다. 퇴직하면 뭐 하고 지낼까? 이것저것 좋겠다 싶어 인터넷 검색해 보면 만만치 않다. 뭐 하나 배워볼까? 싶다가도 "배워봤자 써먹기나 하겠어?" 슬며시 욕심 내려놓는다. 한 번 도전해 봐? 의기양양했다가도 "무슨 이 나이에…." 나이란 놈이 발목이라도 잡는 양 다 나이 탓이다.

백날 방구석에서 이러쿵저러쿵해 봤자 뭔 소용이랴. 거창하지 않으면 어때. 소소한 일거리, 소일거리나 찾아보자.





수어手語를 배워볼까?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뉴스 화면마다 수어 통역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수어다. 수어. 봉사활동도 할 겸 이게 딱이지. 언어 하나 더 배우는 셈치자. 비행기 사고로 낯선 섬에 떨어져 원주민 만난다면 손짓, 발짓으로 말할 수밖에. 비언어적 요소가 전달력이 더 높다잖아. 수어가 세계 만국어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유튜브 강의를 보며 얼굴 찡그리고, 손 내저으며 열심히 따라 한다. 처음에는 재미있기도 하고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숫자 단계 넘어가면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하자 슬슬 귀찮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까이 농인聾人을 만난 적도 없는데 이걸 배워 써먹기나 할까?" 슬그머니 불타는 의욕이 꼬리를 내린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볼까?

난 일을 하고 싶다. 하루 3~4 시간이면 좋겠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다. 그게 뭐지? 무얼 할 때 기분 좋지? 딱, 떠오르는 게 '으흠~ 빵 굽는 냄새'다. 지인에게 제빵제과 자격증을 따볼까? 운을 띄워보자 "어이구~, 밀가루 부대 들어 올릴 힘은 있고?"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건 그러네. 한창나이도 아니고…." 마음 접는다.

아, 그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보자. 카페에서 놀 겸 일도 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 아니겠어. 요즘 베이커리 카페가 대세인데 빵과 커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거지. 서둘러 바리스타 연수를 신청하였다. 한 달 정도 커피머신 작동부터 다양한 핸드드립 실습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웬걸, 커피만 잘 내리면 되는 것이 아니다. 커피 산지부터 로스팅 방법까지 공부해야 한단다. "굳이 이런 것까지 배워야 한다고?" 게다가 자격증 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에라~, 그만두고 말지."




미용 자격증을 따볼까?

연세 드신 친청엄마를 미용실 모시고 가는 것이 큰일 중에 하나다. 제 때 깎지 않고 한 달만 지나도 노인네 행색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집에서 한두 번 다듬어 드리니 그런대로 괜찮아 보인다. 엄마도 마음에 드셨는지 "난 이제 미장원 안 갈란다." 선언을 하신다. 좀 더 배우면 엄마는 물론 남편 머리 커트 정도는 내손으로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양로원 어르신들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해도 좋겠다 싶어 가위에 이발기 등 미용도구를 장만했다.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하자 싶어 미용 자격증에 대해 검색해 보니 간단한 커트 정도만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위생법부터 파마약 성분까지 구분할 줄 알아야 이론 시험을 치를 수 있단다. "에고,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두 손, 들고 만다.




타로를 배워 볼까?

나도 더 나이 들면 경로당이나 양로원에 가지 말란 법 있나. 그때 가서 할마씨들 꼬실만한 미끼로 뭐가 을까? 생각하던 중에 기본에서 심화과정까지 연수받은 '타로상담'이 떠올랐다. 딱, 이거네~ 이거. 하루 운세 봐준다면 사람들이 저절로 꼬이겠지. 복채는 안 받겠지만 이왕 할 거라면 '야매'란 소리는 안 듣게 자격증은 있어야겠지. 그래서 허울 좋은 '타로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강의 듣고 시험 치르면 되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돈 주고 딴 셈이다.

지금도 교장실 테이블 위에 스프레드천이 깔려 있다. 가끔 학생들이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공부보다는 주로 연애고민 상담이다. 카드를 뽑게 하고 한 장씩 해석해 주면 "어머머, 교장선생님 어떻게 아셨어요?"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고 놀라워한다.





책 읽는 친절한 영임 씨 어때?

나이 들면 책이나 실컷 읽자 했다.런데 안구건조증으로 책 한 두 장 읽으면 이내 눈이 뻑뻑하다. 더구나 나이 탓인지 밤에 잠들기가 쉽지 않다. 엎치락뒤치락 꼴딱, 날밤 새울 때도 많다. 때 궁여지책으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잠을 청한다. 노년에 독서 형태는 '보기'에서 '듣기'로 바뀌지 않을까. 들으면서 뭐든 할 수 있으니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도 핑계가 될 것이다. 아, 그래 이거야, 이거. '오디오북'이다. 고령화시대에 사업아이템으로도 끝내주지 않는가?


나이 든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목소리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고, 윤기가 떨어진다. 그러기 전에 내 목소리를 저장해 보면 어떨까? 틈 날 때마다 국어시간처럼 소리 내어 책 읽으며 핸드폰으로 녹음해 본다. 전직 국어선생이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 쉽지 않다. 그동안 눈으로 읽는 것에 익숙해진 탓인지 낮술 한 잔 걸친 듯 혀가 꼬여 버벅대거나 발음이 어물쩍 넘어간다. 특히 격음과 쌍자음 발음이 꼬인다. "이 콩깍지는 깐 콩깍지인가 안 깐 콩깍지인가." 연습해야겠다.

5~60대, 특히 중년여자들이 공감하는 내용의 오디오북을 만들면 어떨까?


별이 빛나는 밤에, 잠 못 이루는 그대에게….


사진제공 https://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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