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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좋다

#여자 #갱년기 #부부 #현대여성

by 노영임
그 뜨겁던 사랑은 다 어디 갔을까?


도대체 가슴이 뛰지 않아요.

전엔 손만 잡아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문제 있는 거 아닌가요? '나만 그런가?' 나보다 연배 높은 지인에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무슨 소리냐는 듯 웃음 터뜨리며 “이 사람아, 결혼하고 30년 넘도록 가슴이 뛰면 살아 있겠어? 벌써 심장병 걸려서 죽었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한다는 듯 눈을 흘겨 보인다. "아, 그런가요?"

여자=사랑 무슨 공식이듯 여자와 사랑을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있을까? ‘사랑 없이 난 못 살아요.’ 이 세상 사랑 없이 어이 살 수 있나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나도 사랑 없이는 못 산다.





국민학교 때부터 이성에 눈 떴나 보다.

1학년 때는 구○회, 2학년 때는 김○연.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똑똑히 이름까지 기억할 정도로 우리 반 남자반장은 다 좋아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젊은 남자 선생님이라면 내 사랑을 비켜갈 수는 없다. 특히 한 달쯤 짧게 있다가 떠나는 남자 교생선생님을 어떻게 안 좋아하고 배길 수 있을까? 혼자만 온전히 좋아하고 싶은데 다른 여자애들도 나와 취향이 비슷한지 경쟁상대가 많다는 게 늘 언짢다. “꺄악!” 대놓고 소리 지르거나 선생님 책상 위에 자질구레한 선물이며 초콜릿 등을 슬쩍 놓고 나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은 “나는 그 딴 데 관심 없어.” 하듯 내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고, 내 자존심을, 내 고귀한 사랑을 지키는 나름의 방식이다.


교회오빠! 얼마나 스위트한가?

중학교 3학년 때 교회 오빠를 좋아했다. 까불까불한 또래 오빠들하는 완전 달랐다. 우수에 찬 눈빛이라니…. 기도할 때도 실눈 뜨고 저만치 건너에 앉은 오빠의 콧날 옆선을 힐끔 보고는 했다. 나에게 교회란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런데 그 오빠가 고등학교 진학으로 타 도시로 떠나게 되었다. 더 이상 교회가 천국이 될 수 없었다. 아니 교회 갈 이유조차 없어진 것이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먹지 않아도 배 고픈 줄 몰랐다. 지독한 사랑앓이였다. 일명 ‘상사병’ 아니었을까.

이렇게 짝사랑에도 가슴이 뛰고, 설레었는데 정작 찐 사랑을 해서 결혼까지 한 남편과 이렇게 밋밋하게 살다니…. 운명 같은 사랑은 고사하고, 내 짝이 맞기는 한 걸까? 맞선 한 번 안 보고, 소개팅 한 번 없이 세 번째 만났을 때 결혼까지 생각했으니 숙맥도 이런 숙맥이 있나?


한 번쯤은 10년 연하남과 연애 한번 해봤으면….

일생일대 소원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했었다. 그러나 내 나이 60살이 넘었으니 이미 물 건너간 소리다. 여자인 나도 늙었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어, 멋있는데?’ 하는 남자를 찾아볼 수가 없다. 자들이야 화장으로 분장하고 귀고리, 목걸이 등으로 얼굴에 집중되는 시선을 적당히 분산시킬 수 있다.

하지만 남자들은 뭐가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다. 나이만큼 스쳐간 골진 바람결과 태양과 맞짱 뜬 흔적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영장에서 보는 아저씨들 몸매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 목욕탕은 남탕, 여탕이 있는데 왜 수영장은 혼탕인가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남자들도 원피스 수영복을 착용하도록 규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참고로 나는 레슬링 꿈나무 선수처럼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수영복을 착용함) "남 말하고 있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나도 그렇게 보이겠지. “다 늙은 아줌마가 주책이야, 주책.” "아니, 할머니잖아?" 그래서 다행인지 모른다. 별일조차 없었고, 앞으로도 별일이 일어날 리 없다.


말이 그렇지. 연애만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TV 채널 돌리다가 부부의 소소한 갈등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출연자는 10살 연하 남자와 재혼한 60살 넘은 여자연예인이다. 헤어진 전남편과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했기에 재혼한 남자와는 ‘잘 살까?’ 항간의 궁금증을 풀어주듯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죄다 쏟아낸다.

그중 하나가 본인이 아플 때 현재 남편이 친구들과 놀다가 밤늦게 귀가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아픈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흥분해서 말한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반격이라도 하듯 아내가 명절에 본인 집에 함께 가지 않은 서운함을 토로한다. “전을 부치라 하겠어요? 설거지를 하라 하겠습니까?” 그 뒤로도 투닥투닥 닭싸움하듯 두 사람 부부싸움이야기는 계속었다. ‘나만 바라봐. 나한테만 잘해.’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서로 얽어맨 채 지지고 볶는다. 사랑 없이 못 산다지만 난 한 번으로 충분하다.

“가족끼리 왜 이래?” 남편은 가족이다. 결혼해서 30년 넘도록 살았으면 이제 남녀 간의 사랑에서 한 차원 뛰어넘는 ‘아가페적 사랑’으로 승화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우리 부부도 ‘인류애’로 살아가고 있다.





여자인 게 좋다.

내가 여자라서 손해 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자이기에 살림이다, 육아다, 승진이다 여러 가지 제약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내 성향을 생각할 때 오히려 남자로 태어났다면 야생적인 남자들 세계에 적응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난 현대 여성이다. 그것도 좀 배웠다는 인텔리(?) 여성이다. 오늘날 태어난 것에 대하여 무한 감사한다. 조선시대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집안 내력을 살펴볼 때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서책을 읽고, 붓글씨를 쓰며 곱디곱게 자랐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주인댁 귀한 아씨 수발이나 드는 몸종이거나 무수리였을 확률이 더 크다. 지금이야 '가난'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죽어라 공부라도 했지. 그 옛날 같았으면 턱도 없는 소리다. 그러니 오늘날 여자로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내 나이쯤엔 여자는 폐경기 전ㆍ후 이분법으로 나눈다.

폐경기라는 말을 ‘완경기’라고 완곡하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폐경기면 어떻고, 완경기면 어떤가? 폐경기라면 ‘폐기처분’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지 어떻게 하면 폐경기를 늦출까? 백방으로 노력들을 한다. 에스트로겐이다, 콜라겐이다 젊어진다는 것을 챙겨 먹느라 유난스럽다. 폐경기로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몸 여기저기 아프고, 이상 신호를 보내는 것이 문제지 여자의 문이 닫히는 게 중요할까? 만약 닫히지 않는다면 연예세포가 톡! 톡! 터지고 있을까? 말랑말랑한 감정이 그대로일까?

아, 난 싫다. 여자로서 사랑도 할만큼 했다. 이제 여자에서 자유롭고 싶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여자가 되었다면 나는 폐경기가 되어 여자에서 사람이 되었다. 젊은 아가씨는 젊어서 다 이쁘다. 이쁜 여자는 이쁘니까 더, 이쁘다. 이게 중년 나이 여자의 너그러움 아닐까?

지금이 좋다. 짜릿함이 없으면 어때. 설렘이 없어도 괜찮다. 덤덤한 지금의 평화로움이 좋다. 내 영원한 애인으로는 ‘어린 왕자’가 있다. 그가 살고 있는 별을 아련히 떠올리며 잠깐씩 그리워하고 위로받으며….


그럼 됐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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