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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자식 낳아봐.

#인생 #순환 #부모 #자식 #손주 #출산

by 노영임
“엄마! 나 양수 터졌나 봐!”


"어머머, 이걸 어째?"

퇴근길에 걸려온 딸 전화 목소리에 마구 가슴이 뛴다. 열 달을 언제 다 채우나 했는데 "아니 벌써?"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리고 다짜고짜 "애야! 얼른 고기 먹어." 이 말이 먼저 나온다. "엄마는~, 웬 고기?"

내가 딸 낳기 직전 산통이 온다고 하자 친정엄마는 대뜸 삼겹살을 굽기 시작했다. 기름기 있는 고기를 먹어야 힘 안 들이고 얘가 쑥! 나온다는 것이다. 그때는 말 같지 않은 소리라고 투덜거렸으면서 이번엔 내가 딸에게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나 제왕절개로 수술하잖아. 힘쓸 일이 뭐 있어.", "아니, 무슨 소리! 어떻게 낳든 아이 낳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전화로는 의연한 척했지만 오히려 내가 더 긴장되어 운전대 잡은 두 손이 오그라 드는 듯하다. 정신 차리자. 자 크게 숨 들이마시고, 숨 내쉬고…. 엄마인 나와 딸이 탯줄을 자르기 이전처럼 감정과 기운이 고스란히 이입되는 기분이다. 내 딸이 아이를 낳는다고? 아이가 아이를 낳는다니….





딸이 결혼하자마자 덜컥, 아기가 들어섰다.(그래서 태명도 ‘띠용!’이다.)

"엄마, 나 임신이래~." 한마디에 "우와~ 우리 딸 장하다. 장해!" 눈물겹게 축하해주어야 하는데 TV드라마에서 봤던 그런 리액션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 우리 딸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지만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온갖 산통 겪으며 아이를 낳고, 젖 물려 키우기까지 결국 여자 몫 아닌가. 내가 겪었던, 우리 엄마들이 겪었던 그 과정을 딸도 고스란히 겪는 것이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 위해 살았는데…. 나는 뭐야?" 갱년기에 접어든 내 또래 여자들 단골 푸념 멘트다. 가족에게 올인한 만큼 기대치는 높고, 서운함도 커지나 보다. 나는 나고, 가족은 가족이다. 내가 가족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지만 가족이 내 전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딸도 최우선으로 자신을 위해 살기 바랬다.


세상 일에는 다 순서가 있지 않는가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 20~49세 우리나라 남녀 절반 가량인 42.6%가 아이를 안 낳겠단다. 그중 여성이 52.9%로 남성 33.1%보다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2024.9.1자) 출산기피 이유로는 경제적 여유, 막대한 교육비 등을 꼽는단다. 아이는 필수가 아닌 선택인가 보다. 아이 대신에 애완견을 안고 다니고,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다니는 젊은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딸도 그랬었다. 아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처럼 나중에 차차 생각해 보겠다고….

요즘은 맞벌이가 아니면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공교롭게도 딸은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앞두고 있었다. 임신과 함께 모든 것이 '멈춤'인 것이다. 사회활동 경력이 단절된 '경단녀'가 된 것이다. 남들은 요리조리 실속 차리며 착착 계획대로 잘만 사는데 이렇게 앞뒤 생각이 없다니, 이런 헛똑똑이들을 봤나.ㅠㅠ





내가 딸아이를 가졌을 때는 어땠었지?

결혼하면서부터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러던 중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3개월 육아 휴직이 끝나고 가사도우미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한 달에 4명씩 바뀔 정도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아이 돌보는 것도 힘든 편찮으신 어르신 뒤치다꺼리에 잔소리까지는 못 듣겠다는 것이다. 학교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이를 멀리 친정집에 맡기고 주말에만 보러 다녔다. 아이를 두고 나올 때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늘 눈물바람이었다.

그런데 덜컥, 둘째 아이. 지금의 딸이 생긴 거다. 눈앞이 깜깜했다. 큰 아이가 좀 자라면 뺑이질치듯한 굴레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길이 안 보였다. 남편도, 뱃속 아이도, 그런 내 처지도 다 원망스럽기만 했다. 사나흘 이불 뒤집어쓰고 울다시피 했다. 뱃속에 저를 갖고 속상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죄짓는 마음이었다. 지금 딸이 그때 내 심정 아닐까? 아니, 딸이 더 암담하지 않을까?


뭣이 중헌디?

몇 날 며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속앓이를 했다.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 속이 이런데 제 속은 오죽할까? 흙탕물처럼 시끄러운 속이 차츰 샘물처럼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제야 뱃머리 돌리듯 생각이 전환된다. 딸을 위한다는 게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고 있지 않는가?

불임으로 몸고생, 마음고생하는 여선생님들이 많다. 어디 선생님들뿐인가. 아들네는 결혼하자마자 아이 갖기를 바랬다. 그런데 3년 넘도록 소식이 없어 무던히 애를 태웠다. 남편과 나도 간절히 바랐지만 "어찌 소식이 없냐?" 물어볼 수도 없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부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써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1~2년 임신 소식이 빠르다고 이리 머리 싸맬 일인가. 아이를 내려주는 건 신의 영역이다. 그런데 취직이 먼저고, 집 장만 하고, 돈 좀 모은 다음에 아이를 달라? 한마디로 신과 맞짱 뜨자는 거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다. 하늘이 내려주는 선물인데 그저 감사함으로 기다려야지.





“밥은 먹었니?”

사위는 출근하고 하루종일 빈 집에서 혼자 지낼 딸아이가 마음 쓰여 출근 시간마다 전화한다. 그 첫인사로 밥부터 챙긴다. “잠은 잘 잤어?”, “오늘은 햇살이 좋네. 산책 좀 하는 게 어때?” 옆에서 수다 떨 듯 이런저런 소소한 대화를 나눈다. 딸이 결혼하기 전까지 30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 시간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엄마! 입덧은 어땠어?” 딸이 물어온다. 30년 전 기억을 되살려 저 임신했을 때 이야기를 해주면 “내가 그랬어?”, "뭘 먹으면 좋아?", “나도 그래야겠네.” 호응한다. 예전 같으면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딱, 선 긋던 딸이었다. ‘아이가 생겨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맞긴 맞는가 보다.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죽이 척척 맞는다. 이제야 내 속으로 낳은 내 딸 같다.


우리 나이에 가슴 설렐 일이 뭐 있을까?

한때는 TV에 잘 생긴 남자 연예인만 나와도 가슴 설레었다. 통장에 성과금이 꽂히거나 적금 만기일이 되면 뿌듯했다. 백화점에서 좀 비싸다 싶은 옷을 사 입으면 며칠은 흐뭇했다. 그런데 그때뿐이다. 지금은 다 시들하고 재미가 없다. 가슴 뛸 일이 없다.

사람이 사람한테서 받는 설렘만 한 게 있을까? 그렇다고 이 나이에 연애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 아이다, 아이!" 손주가 생긴다면 어마나 가슴 설렐까? 적막강산인 집안이 다시 시끌벅적 소란스러워지겠지. "또로로~ 까꿍!" 어른인 우리가 아이 앞에서 재롱을 피우겠지. 상상만으로도 신이 났다.


내 나이 60살. 환갑 나이에 딱 맞게 할머니가 되었다.

친손녀 '나은'이가 태어나 이리도 젊디 젊은 나를 호호 할머니로 만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외손주 꼬물이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아들은 딸을, 딸은 아들을 낳았다. 성별이 이리 정해진 것도 잘된 일이다. 아들은 딸바보 되어 여자 귀한 줄 알 테고, 딸은 남자가 있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알게 될 것이다. 그뿐인가, 저도 나중에 시어머니 될 테니 시부모님 처지도 헤아리겠지.





아침 댓바람부터 아들이 전화한다. 딸 영상통화가 들어온다. 밤새 아이가 칭얼대서 날밤을 새웠네, 우유를 먹고 토했네, 응가할 때가 지났는데 왜 안 하는지 걱정이라는 둥.

“너희는 그냥 큰 줄 알지? 엄마 아빠도 너희를 그렇게 키웠어.” 속으로 읊조린다. 이제야 공평해진 기분이다. 너희도 자식 낳아 키워보니 부모 속 알겠지? 부모, 자식 그리고 그 자식으로 순환되는 이치도….

“산타할아버지가 어디 있어?” 따지면서부터 머리맡에 놓고 잠들었던 양말 속이 텅 비었다. 그렇게 메마른 어른이 되었다. 이제 손녀, 손주 녀석들 때문에 다시 크리스마스가 설렌다. 창고 어딘가에 처박아둔 트리도 꺼내고, 알전구도 챙긴다. 바쁘다 바빠. 요, 강아지들 선물은 뭐로 하나?


인생? 그거 돌고 도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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