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 #공정한 거래 #빈둥지 증후군 #자식
3억 정도 든다지?
요즘 세상에 아이 한 명 낳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는데 대략 드는 비용이란다. 그럼 우리는 다 키워 독립시킨 아들, 딸이 둘이니 도합 6억 정도 비용이 지출된 셈이다. 옛날 어른들 말씀에 자식 크는 게 남는 거라고 한다.
그렇게 치면 나는 적어도 6억대 자산가다.
아무렴 어때?
나 어렸을 때 그랬듯이 장난감이나 동화책은 물론이고 조카 셋이 콧물, 땟물 묻히며 입던 옷이며 포대기까지도 큰집에서 물려받았다. 백일, 돌잔치도 식구들끼리 모여 백일잔치엔 백설기를, 돌잔치엔 수수팥떡을 상에 올리는 정도였다. 요즘 젊은 맘들이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풍선 매달고 이벤트 하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그저 대충 때웠다고 표현하는 게 적당할 것이다. 경제적 형편이 안 되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렴 어때?" 우리 부부의 털털한 철학(?) 때문일 것이다.
제 돈만 아까울까? 부모 돈도 아깝지.
아이들 입히고, 먹이고, 학교에 드는 돈이야 당연히 썼지만 꼭 필요하지 않은 비용 지출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메이커 운동화를 사달라거나 비싼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는 1:1 대응 투자가 적용된다. 즉 본인 용돈 50%, 나머지 50%는 부모인 우리가 보태주는 식이다.
학원도 마찬가지다. 공부하겠다니 당연히 보내주지만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가 다니니까 나도 보내달라 졸라대는 식이다. 처음에는 잘 다니다가 슬슬 꾀가 나는지 학원선생님이 못 가르친다. 다녀봤자 소용없다 등 이런저런 핑계가 하나둘 늘다가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한다. "그래? 그래라." 석 달을 채우지 못하면 그동안 나간 학원비의 50%에 해당하는 액수만큼 제 용돈에서 깎는다. 결정은 본인이 했으니 그 책임도 질 줄 알아야지.
"엄마, 아빠는 대학까지만 가르쳐 줄 거야."
그다음부터는 본인의 몫으로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누가 들으면 남의 자식 맡아서 키워주는 의탁가정 부모 같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볼 때 요즘 자식들은 왜 이렇게 받는 게 당당한가? 부모들은 왜 이렇게 주는 게 당연한가? 자식들은 받을 권리가 있고, 부모는 무조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나. 무슨 종신제 채무관계인 듯하다.
'무한대로 퍼주는 것만이 자식 사랑은 아니다.' 다른 것은 사사건건 의견 대립이지만 이 궤변에 대해서는 의기투합된 우리 부부의 주장이다. 누가 학교 선생님 아니랄까 봐 도덕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기준을 고집한다.
자식이 결혼을 한단다. 얼마를 주지?
그랬던 우리였는데 첫 아이 결혼을 앞두자 기준이고, 소신이고 없이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팔랑귀가 된다. 아파트를 사주네, 전세를 얻어 주네, 예단으로 얼마가 들었다네, 혼수는 얼마를 해주었다네…. 등골 휘었다는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결혼이야 당사자가 돈 벌어서 하는 거지. 능력도 없으면…. 안 그래?' 속으로 흉봐왔다.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건 그렇지 않단다. "요즘 세상에 결혼해서 집 나가 주는 것만도 고맙지." 열이면 열. 부모가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저희들 주머니 사정이야 뻔히 아는데 어쩌나? 궁리 끝에 결혼자금으로 거금 5천만 원 지원하겠노라 중대 선언을 했다. “아들 결혼하는데 부모가 5천만 원 도와주면 충분하지요?” 학교 젊은 여선생님에게 자랑삼아 넌지시 물어봤다. “그럼요!” 할 줄 알았는데 웬걸, “해주지 마세요.” 한다. 속으로 ‘바르게 잘 큰 친구네.' 흐뭇해할 때 이어지는 말이 “겨우 5천만 원이 뭐예요? 차리리 안 주는 게 낫지요.” 한다. “엉?” 순간 어이가 없는 건지, 무안함인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세상이 그렇다는데 혼자 고집부릴 게 아니지 싶어 액수를 상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기 인생은 자기가 만들어가는 것이다.'는 고지식한 생각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아이들 결혼을 앞두고 101가지 감정이 엎치락뒤치락
자식 결혼이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게 아니다. 대견한 듯도 하고, 서운한 듯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고…. 그냥 이대로 같이 살면 안 되나? 싶다가도 "무슨 소리! 나중에 집구석에서 뒹굴거리는 꼴을 어찌 보려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손바닥 뒤집듯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딸의 결혼은 아들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아들은 섭섭하기도 했지만 큰일 하나 끝낸 것처럼 후련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시원섭섭했다. 이제 하나 남은 딸마저 떠나는 것이다. "그래, 다 떠나가네~." 손가락사이로 주르륵-, 모래알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학교 출퇴근길 운전하다가도 툭하면 눈물이 났다. 뭘 해도 재미가 없다. 맥이 탁, 풀린다. '빈 둥지 증후군'이 이런 거구나 싶다. 아이들 결혼시키며 부모도 성장통을 겪나 보다. 서운하다기보다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냥 내 마음이….
그래도 딸 결혼식장에서 양가 부모를 대표한 인사말에서 선언을 했다. 우리는 30년 넘도록 키울 만큼 키웠다. 절대 반품은 안 된다. 땅! 땅! 못을 박았다.
며느리, 사위가 가족인가? 아닌가?
어느 집이나 가족 단톡방이 문제다. 우리 집도 아이들 결혼 앞두고 며느리, 사위를 가족 단톡방에 초대하느냐, 마느냐? 한참 고민이었다. 가족이라 여기면 그만큼 기대와 요구가 생길 테고 서운함도 커지겠지. 가족이라는 올가미를 씌우지 말자. 가족 단톡방에 초대 않기로 마음먹었다. 며느리, 사위도 "왜 초대 안 해주느냐?" 항의하지 않는다. 안 하길 천만다행이다. 까딱했으면 세상물정 모르는 몰상식한 늙은이 취급을 받을 뻔했다. 적당한 거리 둔 채 사는 거다. 살던 대로.
누구는 며느리가 날마다 안부 전화를 한다느니, 브런치 카페도 같이 다니며 친구처럼 지낸다느니, 또 누구는 사위에게 스카프 선물을 받았네, 같이 외식을 했다네. “장모사랑 사위라는 말은 옛말이지. 사위사랑은 장모라니까. 호호호” '우리 집 사위는, 며느리는 말이야….' 뻑시게 자랑들이다.
우리 집은 뭐 그리 할 말이 없다. 요즘 들어 손녀, 손주가 태어나 종종 동영상을 보내 주지만 며느리에게 한 달에 두어 번 연락오나? 사위는 우리가 딸 보러 자주 찾아가서 그런지 안부 전화를 받아보긴 했나? 별로 기억이 없다.
아들은 며느리 남편이고, 딸은 사위 아내다. 부모는 자연스레 후순위다. 그런 중에 나도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그동안은 아이들이 우선이었지만 슬그머니 남편의 존재가 부각된 것이다.
이제 남편뿐이구나.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이 생각난다.
세 들어 사는 행랑아범이 큰 딸 ‘귀동이’ 이름을 부르며 밤늦도록 꺽! 꺽! 우는 소리를 듣게 된다. 다음 날 그 이유를 물어보니 가난한 형편이라 밥이라도 얻어먹게 하려고 큰 딸을 남의 집에 보냈단다. 그리고 “어델 갔나? 잘 있니….” 저리 애타게 찾는 소리란다.
나 또한 아이들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연신 가슴 깊은 곳에서 ‘끙~’ 신음소리 났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자식 떼놓는 애달픈 마음이야 다 한 가지겠지. 부모-자식 간은 자연스러운 세포 분리가 아니라 하나로 감싸고 있는 질긴 막이 찢겨지는 아픈 과정을 겪는가 보다.
자식 결혼을 통해서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된 듯하다. 인생이 뭔지? 좀 알 듯하다.
이제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자식도 없다. '남은 날들은 나하고 싶은 일하며, 나를 위해 살자.' 그것이 자식들에게 치대지 않고 사는 최고의 '부모 노릇' 아닐까?
아이 결혼이 자식 독립이 아닌 부모의 독립이다.
독립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