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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l 28. 2021

"메멘토 모리"와 짐 정리

#1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요 며칠 새 절약 관련 글이 조회수가 높았다. 그러니 수요에 맞춰서 절약 관련 글을 쓰려고 한다. 그렇다, 이른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다"는 것이다. 절약에 대해 직접적인 것보다는 왜 이렇게 나는 물건 사는데 흥미가 없어졌는가에 대한 짧은 정리이다.


#2


   어렸을 때는 만화책을 사서 모으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많이 모은 것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것은 소장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으므로 몇몇 작품은 모으게 되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만화책도 감가상각이 엄청난 편이다. 제대로 모은다면 아예 개봉을 하지 않았어야 하겠지만 그저 깨끗하게 관리하면 된다 정도로만 생각을 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있었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애착이 사라지니 만화책은 그저 자리를 차지하는 짐이 되었다. 그렇게 짐이 그득한 것은 아니지만 책장을 늘리고 싶지는 않아졌기에 마침내 짐이 된 것이다. 깨끗하게 봤으니 중고로 판매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딘 중고서점에서는 받아주지도 않는 상황인 것을 보고 꽤 많은 생각을 했다. 감가상각의 화력, 내 변심에 의한 물건 가치의 대변동(애장품 -> 짐)을 경험하니, 물건을 산다는 것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적이 되었다. 여기서 물건은 대부분의 소비재에 해당되고, 나는 열심히 모은 돈으로 주식 같은 것을 사는 것은 좋아하니 금욕주의자가 된 것은 전혀 아니니 걱정은 넣어두시면 되겠다.


#3


   물건의 감가상각이나 가치의 변화도 변화이지만, 물건을 사고 버리지 않으면 물건은 결국 내 주변에 쌓이게 된다. 이것은 항등식이다. 그리고 사람은 시간을 축으로 사니까 살면서 물건을 계속 사고 정리하지 않으면 물건이 계속 쌓이게 되는데, 사람이 언제 마지막 날을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이다. 사실 죽은 다음의 일이야 알 바가 아닐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잔뜩 쌓인 내 유품들을 누군가가 정리하게 하는 것도 싫고(일단 그냥 이것 자체가 내 일을 남에게 떠넘긴 기분이고), 그런 정리 속에서 내가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수 있는 나만의 사적인 것들이 타인에게 드러나게 될 것도 싫다. 그냥 싫은 정도를 넘어서 소름 끼치게 싫다. 그래서 이미 저지른 것(이미 사버린 것)들은 차치하고라도, 소비재라든가 잡동사니로 전락하기 쉬운 물건들에 대해서는 자체 심의 기준이 매우 높아져 있는 상태이다. 일단 사면 언젠가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을 미리 생각하니 물건을 별로 사고 싶지 않다.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때는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최대한 미리미리 해둬야 하는 것이고, 약속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듯이, 짐 정리를 위한 최고의 방법은 짐을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4


   사실 그런 마음가짐이 든 것은 몇 년 정도 된 이야기라 나는 기본적으로 물건을 잘 사지 않는다. 예외로 먹는 것에는 꽤 관대하지만 그래도 내 분수에 넘는 비싼 음식은 별로, 나는 정크 푸드가 좋기 때문에 돈으론 그럭저럭이다. 이야기가 잠시 샜지만 이 마음가짐 이전에 이미 생성해놓은 잡동사니들이야 많이 있다. 30여 년의 흔적은 가볍지 않았던 것이다. 정리를 해야 하는데 짐이 그득한 서랍을 열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고,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죽음을 기억하고 사는 것에서 파생된 것이 현재까지는 물건을 적게 사는 것 정도에만 머물고 있지만, 이것을 좀 더 온전히 새겨서 내 한정된 인생의 시간을 최대한 가치 있게 쓸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수양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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