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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Aug 06. 2021

욕을 좀 덜하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

   몇 년 간의 직장 생활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바보 같은 짓은 욕을 너무 많이 하고 살았던 행위다. 지금의 나는 도의성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게 찌들어버린 상태이므로, 종교적인 느낌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생각하니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뿐이다. 실용적인(?) 이유에서 하는 반성이다.


   직장 생활에서 아군과 적군의 구분에 착오를 일으킨 편은 아니긴 해서, 직접적으로 낭패를 본 것은 아니지만 섬찟했던 경험이 몇 번 있었다. 내가 한 험담이 내가 인식 가능한 범위를 넘어 가십으로 돌고 있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통제 가능한 범위라고 표현할까 잠시 생각했지만, 한 번이라도 뱉은 말은 절대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함부로 말해놓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때 섬찟했던 부분은 그런 것이 돌고 도는 것에 대해 특별한 터부 조차 없었기에 혀로 문제를 일으킨 나의 귀로도 들어왔다는 점이다. 사실 좀 웃긴 식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기에 짓궂은 유머로 분류되어서 이야기가 돌았던 건가 생각은 했지만, 결국 본질은 험담이었는데 이것이 어찌 이리 활발히 유통되었는가 생각해보았다. 내 결론은 결국 이 이야기에서 위험에 처한 것은 나 하나였기에 사람들이 퍼 나르기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라는 점이었다. 자신들에게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입에 담고 귀로 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럴 것이고 말이다.


   조금 덜 멍청했다면 이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한계 범위보다 더 멍청했기에 곤경에 처하고서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저 문제에 대해서 나는 피해를 본 자(내 험담의 대상)가 상황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남들이 웃기다고 떠들던 것으로) 들었다. 자기 살 길 찾아서 내가 다니는 유사회사를 떠난지는 오래된 시점이었다. 사과할 타이밍도 놓쳐버렸고, 아마 나는 평생 그 자에게 있어서는 뱀 같은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약간 실용성(내 처세 전략) 외에도 지구에 존재하는 인류애의 총량이 영구적으로 조금이나마 감소한 것에 대한 수치심이 있다.


   외국 속담인가에 "남을 저주하려면 무덤을 2개 파라"는 뉘앙스의 말이 있다. 대략 남을 저주하는 자는 자기도 죽을 각오를 하라는 뜻인데, 내 삶을 돌이켜보면 무덤이 수십 개는 되어야 할 판이다. 하나로는 온전히 못 들어가고 분배가 되어야 할 상황일 것이다. 늦은 감이 크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이 들 때 정말 늦었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끝장이니 늦게라도 언행을 교정해야 한다.


   스쳐 지나갔던 인연 중에, 가장 처신에 대해 인상 깊었던 자는 어지간하면 자기의 속내를 들키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자였던 것 같다. 심증이야 있지만 어느 정도 마인드 컨트롤 및 표정 관리,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아우르는 것으로 그 자의 심중은 내가 알아낼 수 없었다. 그 자는 절대 자신이 가진 마음의 패를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고, 나는 내가 가진 패를 남들에게 다 보여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내 성격이야 수리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런 고수의 언행은 내 것으로 소화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욕을 좀 덜하고 살고, 마음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면 처신이 좀 더 수월할 수도 있다. 그러니 쉽지는 않지만 지금이라도 나는 좀 욕은 덜 하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이 무색하게 이번 주는 격노와 급발진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으니 앞으로의 인생이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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