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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Aug 09. 2021

21세기 갤리선의 노 젓는 노예들

#1


   회사와 비슷한 그 무언가(나와 친한 사람들은 이것을 유사회사라고 부른다)를 다니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고용된 사람"이라는 입장은 고전 영화에서 나올 법한 갤리선의 노 젓는 노예들이랑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작년부터 개인적으로 많은 전환점이 있었고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그중에 이직에 대한 시도는 없었다. 나는 가장 먼저는 스마트 스토어에 관심을 가졌었고, 유튜브, 지식 창업, 전자책 등에 관심을 가졌지만 미친 듯한 노력은 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말하기에도 겸연쩍게, 즉 발만 담그는 정도의 시도를 했다. 물론 이 조그마한 경험들이라도 내게 적지 않은 생동력을 불러일으켰지만 이 모든 것은 비밀리에 진행하는 것이기에 유사회사에 불만족스러운 나에게 권해지는 가장 대부분의 권유는 결국 이직이다. 하지만 나는 이직에 대한 마음은 없다.


#2


   그 회사가 그 회사라는 허탈감도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저 처우가 좀 더 나은 노예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진짜 이유일 것이다. 내가 흥미를 가진 타깃들은 큰 사업이나 전업적 자영업이 아닌, 부업으로도 시작해볼 수 있으며 또 나만의 업(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크고 멋진 큰 갤리선이 아니라 허접한 플라스틱 뗏목일지라도 나는 나만의 플라스틱 뗏목을 가지고 싶다. 그중에 하나가 이렇게 브런치에서 글을 써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나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글을 올릴 플랫폼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가고 있고 나도 조금 더 나은 글솜씨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있다. 여러 시도들의 성과를 보자면 물에 뜨는 플라스틱 뗏목조차 현재 내 수중에는 없다.



#3


   나만의 소중한 플라스틱 뗏목은 돈벌이로 환산하자면 내게 한 달에 만 원 정도 발생하는 현금흐름이다. 온전히, 나만의 힘으로 나는 한 달에 만 원을 합법적으로, 안정적으로 벌어내고 싶다. 그렇기에 스마트 스토어를 기웃거리고 전자책을 하나 정도 써봤으며 유튜브도 찔러는 보았었고 블로그도 조금은 했었다가 요새는 브런치에만 올리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시도들은 내게 0 원 정도의 현금흐름을 발생시켰다. 시도를 아예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해도 안된다고 만족할 수준까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죄다 긁지 않은 복권과도 같다. 실패라고 하기엔 너무도 새 것들이다. 다만 포기가 아닌 보류에 가까운 감정이니까. 약간의 시도에도 얻어지는 깨달음은 사전에 진행하는 사고적 실험과의 깊이가 다르다. 몇 가지 시도 항목들에 대해 살짝만 맛봤었지만 우선순위가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브런치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다.



#4


   개인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진 것이 몸뚱이밖에 없다면, 지금 당장은 갤리선에 타고 노를 젓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그렇게 몇 년을 돈을 모으고, 경험과 깨달음을 모아서 마침내 갤리선에서 쓸모없다며 바다로 던져지기 전에 내 발로 벗어나야 한다. 20대 30대 40대의 젊은 영혼이 어느 하나의 갤리선, 또는 갤리선 몇 대에서 모조리 뽑아 먹힌 순간에 더 이상의 미래는 없다. 모아둔 돈은 없거나 적고,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노쇠해졌으며, 스스로 가진 돈벌이의 수단(나는 그것을 배로 비유한다)도 없는 순간 인생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나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5


   나는 내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싶다. 21세기 갤리선들의 수많은 노예들은, 현재의 나를 포함한 수 없이 많으며 평범한 사람들은 가치를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 가치를 정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배들의 선장들 뿐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선장들은 극소수이나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가질 것이다. 대부분의 노예들은 쭉쭉 뽑혀서 쓸모없어진 순간 버려질 것이다. 이것을 피할 방법은 지금보다 나은 배에서 종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배를 만들어서 선장이 되는 것밖에 없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보다 나은 주인을 만난다 한들 그 주인의 마음이 바뀌거나, 주인에게 물려받은 새로운 주인이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처지는 다시 궁핍해질 것이고 이것을 정할 수 있는 고용인(노예)은 없다.



#6


   21세기는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세련된 시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최신이니까. 하지만 그 세련됨은 교묘하게 돈에 의거한 계급 세상을 만들었다. 강자에겐 천국이겠고, 약자들에겐 아주 각박한 세상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 것은 나는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자본주의가 매우 좋다. 그리고 자본주의만 한 체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강자가 되면 꽤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약자가 되면 비명도 못 지르고 죽는 세계이지만 여러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서 가장 생동력 있고 창의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체제 비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체제 전복을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지금은 비루하고 셀 수 없이 많은 노잡이 노예 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지금 계속 나만의 작은 뗏목을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만의 뗏목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지금까지 아주 맛보기만 살짝 했지만 절대 쉽지 않은 모험이 될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둡고 깊은 숲에서 헤매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용기한이 다되도록 남의 목표에 사용되는 것의 결말보다는 운명을 걸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뗏목이 꽤 그럴싸하게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갤리선에서 노를 저어야 하겠지만, 절대로 노만 젓다가 인생을 끝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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