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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Aug 11. 2021

아프면 아프고 힘들면 힘들다

A is A

   주변 지인들이랑 이야기를 할 때, 나는 "A는 A"라는 이야기를 매크로처럼 한다. 예를 들어 누가 아프거나 안 좋은 구석이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다거나 하면, 먼저 쾌유를 빌면서 내가 꼭 하는 말은 "아프면 아프다"이다. 옛날의 인기 드라마 "다모"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대사가 꽤나 유명했는데 이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저 드라마 대사에서는 A가 부상을 입었는데 그걸 안타깝게 바라보는 B가 말한 로맨스적인 대사였는데, 거기에서 온 것이긴 하지만 내가 쓰는 법은 다르다.


   친구건 지인이건 드라마 대사처럼 하기엔 내 쪽에서는 진심이어도 상대방은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뭐 사실 진짜로 내가 (육체적 및 정신적으로) 아프진 않아서 빈 말처럼 되기에 오로지 직관적으로 쓴다. 아프면 아프다를 좀 더 완성한 문장으로 바꾸면, "네가 아프면, 네가 아프다"이다. 그러니 빨리 낫고, 더 이상 아프지 마라. 같은 의미가 들어있다. 나만의 진심 어린 위로이지만, 알음알음 내 지인들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언어나 표현은 그렇게 퍼져나가는 것일 것이다.


   옛날 수능 언어영역 기출이었는지, 모의고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이 표현한 언어적인 개념이 서로에게 온전히 공유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지문이 있었다. 인상이 깊었던 지문이라 기억하고 있다. 대략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깊게 공감을 하고 어떤 감정인가에 대한 유사한 결론이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정말 같은 감정일까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러이러해서 슬펐다는 이야기를 듣고 깊이 공감하여 나도 슬프다는 결론이 나왔더라도, 정말 정확하게 일치하는 슬픔일까 하는 뭐 그런 이야기였는데 십수 년 전에 읽은 것이니 정확성은 보장할 수 없다.


   부정확한 기억만 남았지만 어찌 되었건 나나 타인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들이 정확하게 일치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달아서인지 공감이나 감정이입은 하지만 그것에 대해 100% 나는 지금 네가 어떤 감정과 생각이야!라고 확신하는 짓은 그만둔 지 오래되었다. 누군가가 아프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이고 쾌유를 빌며 얼마나 신경 쓰이고 거슬릴까(아프면 신경이 많이 쓰이고 거슬린다)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보고 말을 한다. 다만 타인의 감정 자체를 어렴풋이 짐작은 하지만 절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실제와 유사하더라도 온전히 같지는 않을 테니까.


   그래서 언제부턴가 표현을 저렇게 하고 있다. (네가) 아프면 (네가) 아프다. (네가) 힘들면 (네가) 힘들다. 아픈 것도, 힘든 것도 온전히 각자의 것. 그저 그런 상황인 것을 이제는 내가 안다(I know)고 말할 따름이다. 타인이 쉽게 짐작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매우 개인적이고도 절대적이라고도 생각한다. 타인은 타인의 아픔, 힘듦에 대해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짐작할 수 조차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그러니 생각하길, 내가 아프고 힘들고 한 것이 남의 인증과 인정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나는 회의적이다. 내 인생에 대체 남이 알게 무엇인가. 내 마음, 감정 같은 것은 짐작조차 못하는 주제에. 대략 이런 느낌으로 타인의 생각이나 결론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고 살게 되었다. 내 의견과 감정도 타인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도 약간 있다. 네가 아프기 때문에 내가 아프다 같은 말은 실제로 아픈 사람은 사실 듣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옛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문맥이 잘 맞았을 것이지만.


   언제나 브런치에 즉흥적으로 글을 쓰니 중언부언이 많은 것은 알 사람들은 알 것이고 일단 개선점이라고 생각은 한다. 사실 회사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걸 썼는데 뜬금없이 통계 그래프가 치솟길래 아 사람들이 참 대인관계가 힘들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든 참에 하나 더 적어보았다.


   남이 뭐라하건 당신이 아프면 당신은 아픈 것이고, 당신이 힘들면 당신은 힘든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각자의 것이다. 인공두뇌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감정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뇌라든지 심장이라든지)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때까진 온전히 각자의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부등호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아예 비교할 수조차 없으니까.



   아프신 분들은 아프시면 아프시기 때문에, 얼른 쾌유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몸의 아픔이라는 것은 최근에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무겁게 다가온다는 것을 점차 크게 체감하고는 있습니다. 아프신 분들의 아픔, 짐작할 수 없지만 극복해내시기를 바랍니다.


   삶이 힘드신 분들은 힘들면 힘드시기 때문에, 도움은 전혀 되지 않겠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그저 단어뿐인 응원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힘드신 것은 (이제) 압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무지막지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은 해봅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온전히 각자의 것이니, 온전히 스스로 극복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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