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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Aug 23. 2021

마음의 그릇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그릇이 있다. 이 그릇은 일반 상식과는 정반대로 기능하는 점이 신기하다. 보통 그릇은 안에 내용물을 담고 더 담으면 내용물은 계속 더해질 것이고, 담긴 내용물을 빼면 뺄수록 내용물은 줄어들 것이다.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마음의 그릇이라는 것은 이 자명한 상식과는 반대라고 생각한다.


   원래 마음의 그릇에는 조금씩 내용물이 차올라오는데, 특이하게도 그 내용물을 퍼내어 다른 그릇에 부으면 더 많은 내용물이 올라오게 된다. 반대로 본연이 아닌 내용물을 마음의 그릇에 담게 되면 내용물이 차올라오는 것이 점차 줄어들게 된다. 일반적인 그릇과는 정반대로 기능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그릇에 타인이 내게 넘겨준 것이나, 타인에게서 억지로 빼앗아온 것만을 계속 담는다면 그릇은 밑이 빠진 것처럼 수고에 답하는 일 없이 내용물은 다 새어나가고 없을 것이다. 처세의 문제든, 관계의 문제든 상관없이 타인에게서 물질이든, 관심이든, 애정이든 그러한 것들을 일방적으로 취하는 것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의 마음의 그릇엔 든 것이 없다. 든 것이 없고, 솟아 나오는 것이 없기에 다른 곳에서 퍼오는 것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계속 그러다 보면 선뜻 자신의 그릇을 내어줄 사람들도 점차 줄어들며, 마침내는 그릇이 깨져버리고 만다. 마음의 그릇이 부리는 요술 같은 원리보다도 극심하게 내용물들은 고스란히 전부 새어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베풂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베풀지 못하게 되는 것을 더 염려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친절하지 않은 것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을 더 염려한다. 타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내가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염려한다.


   깨진 그릇은 날카로워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을 것이고, 냄새나고 더러운 곳에 사람들은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내 그릇이 크고 단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나 자신이 향기로운 꽃밭과도 같은 곳이 될 수 있다면 억지로 애쓸 것이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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