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Aug 18. 2021

외제차와 난초

   몇 개월 전에, 청소년기 시절의 친구의 취업 축하 밥 사주기 이벤트가 (당시에도 친구의 취업 시점은 꽤 지났었지만) 거행되었다. 평범한 직장보다는 전문직을 원했기 때문에 몇 년의 고생 끝에 전문직이 된 친구였다. 친구의 부모님도 종목은 다르지만 전문직이라서 수험 기간 간의 경제적 생활 자체는 문제가 없었겠지만, 몇 년의 수험생활은 역시 큰 고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쨌든 그가 전문직을 합격하고 난 후에 내 기억상으로는 처음 본 것이었는데, 집에서 겸사겸사 쓰자고 비싼 외제차를 주로 몰게 된 친구가 태워준다는 전개가 되었다.


   새 차인데 1억은 넘는 외제 차였고, 내 좁은 사교 범위 상 아마 제일 비싼 차였지 않을까 생각한다. 차가 있으면 장점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기에 경제적 여력이 되는 사람이 가처분소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 멋있는 차였고 신기하긴 했다. 다만 친구의 애지중지함이 너무 잘 느껴져서 나는 다소 기분이 묘해졌다.


   물욕을 초탈했다기보단 물욕에 지배된 자로써, 그리고 나 자신도 살면서 당연히 물건에 집착을 해보고 애지중지한 경험이 있기에 친구의 마음이 아주 잘 이해가 되었다. 효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표시되는 가치로 따져보자면 내가 집착했던 것의 몇 백 배니 충분히 애지중지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서라면 당연히 저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 고승의 일화가 생각나긴 하였다. 그가 지인에게 선물 받았던 난초가 있었고 그는 정성스레 길렀었는데, 하루는 햇볕을 쬐게 하기 위해 내놓았다가 다시 들이는 것을 깜빡하는 바람에 난초의 생기가 잃게 되었다. 이때 고승은 자신이 난초에 "집착"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얼마 뒤에 다른 지인에게 난초를 넘겨주었다는 일화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관한 일화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 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라는 스님의 글이 환기가 되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지만, 내 오랜 소망은 물질적인 플렉스보다는 내 부를 내가 원하는 방향에 풍족히 써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고 믿고 살고 있다. 이 마음과 믿음이 내가 목표로 하는 부자에 도달했을 때 변질되지 않고 남아있을지 장담은 전혀 못하겠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은 것이니까. 다만, 친구의 애지중지함에 담긴 마음의 얽매임을 보니, 역시 럭셔리한 삶은 내 깜냥엔 안 될 것 같다. 이 간접경험을 통해 언젠가 부자가 되더라도 비싼 차는 사고 싶지 않아 졌다. 정확히는 비싼 차를 사서 그것에 얽매이지 않을 자신이 없는 것이다. 내 옛 경험들이나, 친구의 모습을 봐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 내가 취할 방침은 얽매일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 될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나쁜 회사의 번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