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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7. 2020

마이크로 에디팅은 왜 나쁠까

괴이한 창작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

 어느 날, 당신의 사장이 이유를 모르게 당신을 호출했다고 해보자. 기본적으로 당신은 사장과 직접적인 일을 공유하는 상태가 아니다. 따라서, 당신은 사장이 호출할만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부르니 어쩌겠는가? 사장실로 가서 이야기를 해보았다고 하자.


당신: 사장님, 호출하셨길래 뵈러 왔습니다.

사장: 아 * 대리(당신), 잘 왔어요.

당신: 무슨 일로 호출하신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사장: 아~ 별건 아니고, * 대리의 명함을 봤는데 이상한 부분이 있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아서(웃음)

당신: (내 명함...?) 이상한 부분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장: * 대리 이름에 ㅓ가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ㅓ를 영어로 EO라고 쓰는데 여긴 U로 되어 있어서. 이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돼서 그래요.

당신:...................... 네?


 이런 것이 마이크로 에디팅이다. 딥 러닝 기술을 활용해서 우리 사장의 정신세계를 구현했을 때 일어날 수 있을만한 비슷한 사례를 창조해보았다(실제 사례는 위험해서 창작했지만, 실제 정신세계와는 비슷하다). 여기서 사장이 하는 행동이 마이크로 에디팅이다.


문제점

1. 사장이랑 당신은 어차피 일을 같이 하는 관계가 아니고, 당신의 상사는 어차피 따로 있기도 하다. 일단 당신을 호출하는 행위 자체도 사장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효과가 있다. 좀 덜한 마이크로 에디팅이라면 아마 당신의 상사에게 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뭐 그래도 마이크로 에디팅인 것은 마찬가지다.


2. 사장이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쓸 데 없는 것을 신경 쓴다는 것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사장의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다. 사장의 시간도 1년 365일 일주일 24시간이지, 사장이라고 더 많고 그런 것이 아니지 않은가. 따라서 저런 시답지 않은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이 회사에서 제일 중요할 수도 있는 사람의 시간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3. 아무래도 좋은 것에 꽂혀서 집착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여권명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것이 오타일 수도 있겠지만 이미 사장은 ㅓ는 EO로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자랑하고 싶어서 당신을 부른 것일 테니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창 실랑이를 해서 ㅓ를 EO가 아닌 U로 표기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사장실을 나온 당신, 피곤하지 않은가?


4. 적재적소의 조언은 절대 마이크로 에디팅이 아니겠지만, 관계에 따라 마이크로 에디팅과 거의 같아질 수 있다. 만일 당신의 이름이 정말 오탈자가 있거나, 사무실 주소가 틀렸거나, 메일 주소가 틀렸거나 한다면 이런 것은 지적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마이크로 에디팅과는 비슷할 수도 있지만 바람직하지는 않다. 그냥 담당 상사에게 한 마디만 해두면 되는데 굳이 이걸 불러서 하는 행위는 시간 낭비가 심한 것이다.


요점은, 시간 낭비가 일어나는 것이다. 신경 써줘야 하는 대상이 아닌데 신경을 쓰는 것(1번), 그러다가 자기가 해야 할 일에는 소홀해지는 것(2번), 남까지 괴롭히는 것(3번), 조언일 수도 있만 그걸 꼭 직접 해야 하는가(4번)의 문제이다.


실제 사례 중에 하나

 옛날에 사장이랑 사원이랑 싸운 적이 있는데, 뭐로 싸웠냐면 사원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파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싸웠다. 사장은 바탕화면의 파일이 너무 많으면 컴퓨터가 느려진다는 카더라(실제 같기도 한데 아무렴 어떤가... 자기 컴퓨터나 제대로 관리하라고)를 자랑하고 싶어 했고, 사원은 딱히 느리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의견은 평행선이었다. 당시의 대화를 건너 전해 들었는데 재구성해보면 아래와 같다.


사장: (사원을 불러서) 컴퓨터 불편하지 않아요?

사원: 아뇨?

사장: 불편할 거 같은데~?

사원: 전혀 문제없는데요?

사장: 아니 불편할 거라니까.(슬슬 짜증 나기 시작함)

사원: 아뇨 잘 쓰고 있습니다.(이쪽도 짜증 나기 시작함)

사장: (화냄)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바탕화면에 파일이 너무 많으면! 컴퓨터가 느려져!

사원: (이쪽도 탈주 임박 시기라 화냄) 아뇨, 제 컴퓨터는 좋은 거라 그런지 괜찮은데요!

사장: 파일이 많으면 느려진다니까!

사원: 안 느려요! 괜찮아요!


결국 사원의 고집이 이긴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로 촌극이 아닐 수 없다. 바쁜 사람들끼리 이런 걸로 업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다니.


또 다른 실제 사례

 해외 업체랑 계약이 있어서 계약서를 확정받기 위해 사장을 만나러 간 직원(바탕화면 사건의 당사자와는 다른 인물이다). 상당히 이국적인 나라이지만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는 나라에 있는 업체였다. 이런 문장을 언급한 이유는 조금 뒤에 나온다. 아무튼 업무이니 그냥 서류만 잘 확인하면 되는데, 사장의 사람을 시험하고자 하는 호승심이 전설을 남기고 말았다.


사장: (서류를 검토하다가 대뜸) 그런데 말입니다.

직원: 네?

사장: (갑자기 계약서 종이를 특정한 형태로 변형하더니) 이렇게 연주하는 악기가 이 나라에 있는데 이름 알고 있어요?

직원: (자신의 귀를 의심함)................................... 네?

사장: (악기를 연주하는 흉내를 냄) 그러니까 이 나라에 이런 식으로 연주하는 전통 악기가 있는데 이름 아냐고 물어봤어요.

직원:... 모르겠습니다.

사장: (내가 이겼다) 해외 업체랑 계약을 하고 거래를 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나라의 문화도 알아야 해요. 내가 말한 악기가 뭔지 조사해오세요.


그렇게 그 직원은 서류 확정을 받는 도중에 해당 업체가 있는 나라의 전통 악기를 조사해오는 것을 맡게 되었다. 이것도 전해 들은 것이라 그때 아예 서류가 반려되었는지, 서류는 승인해주되 그 악기 이름을 알아오라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광기 어린 이야기임에는 변함이 없다.


얻을 수 있는 교훈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로 이어질 수 있는 과도한 간섭은 매우 해로우니 지양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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