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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7. 2020

오늘 하루만의 최선을

그것이 인생의 전부

 저는 원래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하게 해 나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원래도 글이든 무엇이든 보통 "주제"라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떤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각종 매체가 활용되는 것이죠. "매체"를 요약하면 "주제"가 나올 것이고, "주제"에 살을 붙이면 "매체"가 됩니다.


 제 글을 조금 접해주신 분들이라면 제가 희소성, 유한성 등의 개념에 대해 굉장히 집착이 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리라 생각해봅니다. 이 글도 시작점은 "사람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는 명제에서 시작합니다. 영원히 존재하실 수 있는 분들은 이 글을 읽으시는 것이 시간 낭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읽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사람의 삶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은 현재의 과학 기술 수준으로 진리일 것입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을 극복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마음과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그것이 심장인지 뇌인지, 다른 어딘가 인지), 생명체인 이상 생물학적인 죽음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마음과 정신은 생명체에 묶여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좀 더 피부에 와 닿게 하기 위해 숫자를 가져오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N일 동안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N은 태어났다면 0보다 크겠고, 사람마다 다릅니다. 유아기, 돌 때 생을 마감했다면 그 사람은 365일을 살았겠죠(번거로우니 윤달은 제외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70년을 산 사람이라면 그의 나날은 70*365 = 25,550일이었을 겁니다. 삶은 영원하지 않기에 숫자로 표현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는 지금도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유한한 생명체이기에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매체를 통해 접하듯이 안타까운 소식들도 많게 됩니다. 큰 사고를 당해서 유명을 달리하거나, 스스로의 결심에 의해 떠나가거나, 많은 상실의 이야기는 언제나 매체에서 흘러나옵니다.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을 테니, 죽음이란 우리의 삶과 더 가깝습니다.


 특히 스스로 행동한 것이 아닌 갑자기 찾아오는 불의의 사고는 천수라는 개념과 별개로 작동을 합니다. 어떤 사고가 없었다면 80세까지도 살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사람이라도 그 사고에 의해 세상을 떠난다면 80년 이란 숫자는 큰 의미가 없게 되니까요.


 정리하면 우리의 삶이란 유한하고, 그 기간도 절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매체에 나오는 수많은 억울한 사건의 희생자들이 자신의 미래, 운명을 알았을까요? 이렇게 갑자기 자신의 세계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사실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미리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면 말이죠.


 그 끝(각자의 세계의 끝)에 직접 도달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삶이 유한하고, 언제라도 내 예상과 다르게 끝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 결론은, 그러니 오늘 하루가 전부이니, 매일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일출과 일몰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서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도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다는 것만큼 위험한 착각은 없습니다.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모두 다른 나날들입니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었기에, 내일도 있으리라는 마음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내일 친절하면 되니까 오늘은 불친절해도 될까요? 내일 그 사람을 반드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세상 어디에 있나요? 어떻게 장담하죠? 이런 것은 분명히 오만한 생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삶이 지치고 힘들어서 약해지고 괜한 투정을 부리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소한 것,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날 하루하루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이 유한한 시간의 일부를 조금씩이지만 확실히 후회할 것이 확실합니다. 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후회가 많은 인간이었기에, 앞으로는 후회를 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MCU의 영화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 3:시빌 워" 초반에, 토니 스타크는 홀로그램으로 자신의 부모님과의 마지막 시간-안타깝게도 서로 서먹서먹했던-을 돌이켜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홀로그램을 띄워놓고 회고하며 그렇게 영원히 이별할 줄 몰랐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이 영화 캐릭터만의 이야기일까요? 액션 영화에 액션이 빠질 수 없지만, 드러난 진실과 부모님의 원수를 알게 된 토니 스타크의 분노의 이야기가 제일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뭐, 모든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주의는 아니지만 저는 성격이 그렇습니다. 간접경험은 소중한 것이죠. 최대한 많이 뽑아내고 공감할 수 있으면, 그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따라갈 수는 있습니다.


 오늘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과 교감이 유한하고, 언제 그 끝이 찾아올지 알 수 없다는 걸 알면 그들에게 화를 내는데 조금 망설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매 순간순간이 인내심의 한계일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딱 오늘 하루만 최선을 다하는 거죠. 그리고 다음 날이 밝으면, 또 이 새로운 하루만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이런 나날이 이어지다 보면, 우리는 좀 더 관대해지고 친절해질 수 있고 당연히 여겼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과 미래를 최선으로 채워나간다면, 비록 이미 쌓았던 후회할 일들은 어떻게 할 수 없겠지만 더 이상의 후회는 만들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잘난 듯이 써놨지만 이 글의 제1독자는 저 자신이기에, 자신에게 하는 말과도 같음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나날이 오래 유지되기를 기원하며, 혹 그 끝이 급작스럽더라도 후회가 많이 남지 않을 최선의 삶의 나날이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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