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Nov 28. 2020

남을 탓하는 것을 멈춘 이유

정확히는, 아직 노력을 하는 단계이죠

제가 남을 탓하는 것을 이제는 멈춘(멈추려고 노력하는) 이유에 대해 기록해두고자 합니다.


 소싯적에(?) 남 탓과 비방을 내로라하게 잘하는 자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접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제일 호전적인 자로서 여러 모로 몹시 망했고, 혹 다른 곳으로 간다면 이 뼈가 저리는 실책은 반복하지 않겠다 생각하지만 뭐 거기 가서도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인간은 바뀐다고 생각하지만, 급격하게 바뀐다고는 여전히 생각하진 않습니다. 바뀌려는 노력이 정말 중요하겠죠.


남을 탓하는 것이 나쁜 점: 진통제

 남을 탓하는 것을 멈춘 이유는 도덕과 윤리의 문제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실질적인 해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 컸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불만족스러운 상황이나 결과가 나왔을 때 그것 자체로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다. 또 고통스럽더라도 그 상황이나 결과를 분석을 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남을 탓하면 우리의 잘못은 없는 것이 됩니다. 남을 탓하면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통을 잠재울 진통제를 맞아버리는 겁니다.

 객관적인 사실이라는 것은 찾아내기 매우 어려운 것이고 검증하기도 검토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사회의 핫이슈들을 보면 팩트 체크에 대해 갑론을박은 매우 흔한 모습입니다.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은 그만큼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남 탓을 했을 때 그것이 객관적 사실이 되려면 오로지 남의 잘못 100% and 내 잘못 0% 인 경우에만 성립합니다. 하지만 세상살이가 남 잘못 100 대 내 잘못 0인 경우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묻지 마 범죄의 피해자라거나 공권력에 무고한 압제를 당하거나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면, 평범한 일상에서 저런 남 탓이 온전하게 객관적인 사실로 적용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남을 탓하게 되면 결국 자기 잘못은 없는 것으로 자신은 인식을 합니다. 여기서 자신의 사고나 언행 등을 돌이켜볼 기회가 없어집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통제는 통증을 진정시키는 것이지 치료제는 아닙니다. 어떤 문제에서 남 탓을 했다면 결국 자기 탓은 없다는 이야기인데, 알고 보니(그리고 실제로) 자기 탓이 섞여있었다면 고치거나 개선해야 하는 부분을 남 탓을 하느라 확인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남의 탓을 하고 자기가 고쳐야 할 점을 외면하는 순간부터 상처(내 잘못, 내 단점)는 곪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나는 악취와 진물과 감염은 결국 자신을 죽이게 될 것입니다. 치료 대신 진통제만 맞으면 병은 나을 수가 없습니다. 남 탓은 심각한 마음의 병이죠. 마음이 병든 사람은 인망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고독하게 되겠죠. 맨날 남 탓만 하는 사람, 정말로 볼썽사납잖아요? 


남을 탓하는 것이 나쁜 점: 면죄부

 면죄부로 비유해본 남의 탓은 뭐냐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명분도 없이" 주는 겁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으니 고칠 것도 없다는 기적의 논리가 성립해버립니다. 자정 작용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나게 남 탓을 해도 남들은 그런 것에 하나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패배자의 넋두리 정도로 생각하겠죠.

 그리고 남 탓은 필연적으로 수동적입니다. 남 탓은 자신을 무고한 피해자로 만드는데 정작 가해자는 실체가 없죠. 법치국가라도 경찰이 가해자를 못 잡으면 가해자에게 벌을 줄 수 없습니다. 매우 "물리"적인 이야기입니다. 남 탓을 하면서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있지도 않은 가해자를 원망하게 되니 백해무익합니다. 자기 인생이 안 풀리는 모든 이유를 밖에서만 찾는다면, 결국에는 자신이 딱히 발버둥 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점이 무섭습니다.

 참고로 노력의 이야기는 별개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해라, 이건 방법론이죠. "남 탓을 하지 마라"는 "노력을 하라"는 것과 서로 독립적인 이야기입니다. "노력을 하든 하지 않든, 절대 남 탓은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에게 좋다"는 것이 제가 최근에나 깨달은 것입니다.


정리

 남 탓을 하면 그때는 덜 아픈 것 같지만 나중에 더 크게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필수적인 자정 작용을 멈추게 하면서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빼앗고, 그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공허하며, 수신인도 불명인 원망만 반복하며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듭니다. 도덕과 윤리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매우 강력한 맹독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해 긍정적인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발전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100% 남의 탓인 것 같아도 속이 쓰리지만 곱씹어보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힌트가 들어있는 경우(반성점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남 탓을 하면 이런 것들을 다 무모하게 저버리게 되는 점이 매우 아깝습니다. 


 또한 태도가 수동적이 되고 패배감에 젖어서 포기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도 아깝습니다. 더 이상 발버둥 치지 않게 되는 것이 싫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남이 되어버리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이제 남의 탓을 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나는 남을 절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하면 안 되고), 나는 나를 좌지우지할 수는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남의 탓보다는 자신의 탓을 하지만 그걸로 절대 무너지는 것이 아니며, 그러면 이제 나는 무엇을 하면 되지? 무엇을 해볼까? 하며 고민하는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즐겁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 하루만의 최선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