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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03. 2021

"있는 그대로"의 함정

노력의 가치에 대해

   최근 머리 아픈 주제에 대해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잠시 글에 대한 의욕을 잃고 있었다. 인생의 의미를 고찰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인터넷이란 정말 엄청난 도구일 것이라 생각한다. 세기의 발명품 프로를 보면 꼭 거론되는데, 대개 인터넷의 한계는 아직도 알 수 없다는 말을 패널들이 많이 하고 나도 동의한다. 인터넷을 활용한 수많은 것들 중에 커뮤니티도 파급력은 크다고 생각한다. 브런치도 플랫폼이고 브런치를 사용하거나 카카오톡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공유될 기회가 큰 특성을 가지고 있다.


   참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사람마다 성향도 다 다를 테니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일 것이다. 나도 인터넷을 어렸을 때부터 써왔던 세대이고 커뮤니티를 했다 안 했다 하며(몇 년 전에 다시 끊어서 활동하지는 않는다) 인생을 살고 있다. 최근의 머리 아픈 주제는 커뮤니티에서 대두한 것이니 접하는 빈도는 늘었지만 활동은 하지 않는다. 매우 피곤하기도 하고,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에 가장 먼저 끊었던 것이 커뮤니티였으니까.



   대한민국은 엄연히 경쟁사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적인 잣대로 1위부터 가장 마지막 자리까지 순위가 메겨지고 있다. 종종 설문조사나 소득 액수, 자산 규모 등으로 이 "순위"에 대해 우리는 결코 완벽하게 알 수는 없겠지만 관심을 크게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등수를 매기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은 이 사회에서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다수는 인지하지 못하는 듯하다. 이 경쟁과 줄 세우기는 절대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정치인, 경제인, 연예인, 유명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정글에 홀로 떨어져서 동물과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이상 우리 모두는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멈춰서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언젠가 추월당하는 것뿐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정말 크나큰 위험 사상이다. 낭만적이긴 한데, 현실적이진 않다. 타고난 외모에 강점이 없고, 그나마도 전혀 관리를 하지 않아 살이 매우 찌고 평소에 잘 씻지 않아 불쾌한 냄새가 나고 직업도 없이 가족에게 모든 생계를 의존하며 의무 교육 이후의 배움도 멀리하며 그저 적당한 말(대개는 적당하지도 않은 무논리이지만) 정도 하는 것이 한계고 사회 관계도 이루지 못하는 성년자가 있다고 하자. 나는 별로 방금 언급한 사람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 저런 사람과 친해져야 할까? 누구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저 묘사된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보자. 자기 자신의 이야기라는 메리트로 입장이 바뀌어서 저런 사람(알고 보니 자기 자신)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친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아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자기 자신을 저런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지도 않는(객관화 거부) 것이 좀 더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울 것 같다.


   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력을 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에 한해서.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더 하찮게 볼 것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고.


   가족한테, 스스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라고 주장하는 것을 나는 못 하겠다. 남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수치스러운 것도 그렇고, 핏줄로 엮인 가족은 고통받겠지만 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경쟁사회에서는 남의 호의를 받는 것도, 선망을 받는 것도 다 타고난 것이든 노력을 하는 것이든 결괏값이 나오는 대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인정에 호소할 것도 없다.


   결국 노력은 누구나 해야 한다. 비교 대상은 나 자신이다. 나는 맥주병인데, 내가 수영을 엄청나게 노력한다고 해서 황선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황선우는 타고난 것도 있을 것이고 노력도 미친 듯이 할 테니 비교가 불가한 것이다. 이렇게 비교할 필요도 없고. 그럼 무엇이랑 비교하는가 하면 바로 나 자신이다. 즉 "맥주병으로 계속 남은 나"와 "맥주병 주제에 수영을 엄청나게 노력한 나"의 비교다. 전자는 물에 빠지면 남이 구해주지 않으면 확실히 죽을 것이다. 후자는 전자보다는 생존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리고 수영에 재능이 없어도 일단 노력은 했으니 내 최대한의 수영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살도 좀 더 빠지고 체력도 더 좋아지겠지. 취미가 하나 늘어서 기분이 좋을지도 모른다. 이게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자신의 한계는 언제나 명확하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개발한다는 측면에서.


   경쟁 사회에서 줄 세워지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그 경쟁은 실제로 불공평할 것이다. 나보다 타고난 것이 많은 사람이야 수두룩 빽빽하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포기하고 낙담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노력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자신이 결코 될 수 없다. 노력만 하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있기는 할 테니까. 노력을 안 한 나 자신이 보는 곳과, 노력을 한 나 자신이 보는 곳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테니까. 그러니 노력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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