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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4. 2021

거북한 자에게 선물을 보내다

   두목의 나라에서 오래 있으면서 나와 가장 많이 충돌한 거북한 자가 있다. 원픽으로 많은 레전드 일화와 분노를 남긴 자이며, 지금도 내 감정은 전혀 좋지 못하다. 얼마 전에 그 자의 기념일이 하나 있었다. 생각해보니 작년에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준 것이 기억이 났다. 물론 그때 감사는 표했다만 물질로 돌려준 것은 없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카톡 감옥이 있지만 조용히 넘어간 상황이고, 뿌리 깊이 감정도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최근엔 마찰할 지점이 별로 없어지기도 했다. "Out of sight, out of mind"는 긍정적인 것에서도 해당하고, 부정적인 것에서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도리어 다른 자들이 내 화를 주로 돋우기에 조금 유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나를 아는 사람들에겐 정말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으리라 생각은 들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 큰 고민은 없이 치킨 세트 정도의 비용을 사용해서 선물을 보냈다. 하지 않던 짓이긴 하지만 작년에 무언가 받았던 것에 대해 기억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하고 싶어서 그랬을까.


   회신은 쓸데없이 길어지지 않게 서로 간략하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생각보다 기분은 좋았다. 말이 거북한 자이지 원수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 쪽의 감정은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그렇게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도 나를 들여다보듯이, 상대방도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고 어쨌건 나 자신이 아니기에 진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내가 접한 이슈들이나 그런 것들은 나를 너무 지치게 했던 것 같다. 타오르는 증오와 맞불을 놓는 또 다른 증오들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다. 과연 증오를 증오로 갚고, 분노를 분노로 갚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던 요즘이다.


   거북한 자에 대해, 깊은 원한이라면 원한이지만 그로부터 내가 받은 후의가 하나도 없었을까 생각해본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잘해준 것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나에게 모질게 대한 것만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겸허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하자면 그렇다고 생각한다.


   거북한 사람의 축하받지 못한 날에 대해(뭐, 가족들이야 축하하겠지만 직원들에는 외면당한 것이니) 침묵을 지키고 속으로 비웃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시점을 달리 해서 생각해봤을 때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끔찍한 일이다(자신감 있게 말하는 것 치고, 나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그때의 선택에 대해 나는 큰 망설임이 없이 비용을 쓸 수 있었던 것이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와는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입장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니까. 다만 이 일을 계기로 어느 정도 그를 증오하느라 "스스로" 짓누르고 있던 것에서 풀려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 자신에게 있어서 크게 고무적인 일이다.


   결국 옛사람이 말한 "원수를 이웃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이 원수를 위함이 아닌, 듣는 사람을 위한 말이었음을 생각한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자세도 크게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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