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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Feb 28. 2022

아무한테나 잘해주지 마라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내 오랜 친구 중 열정을 가지고 타지로 돈을 벌러 떠난 친구가 있다. 그가 직접적으로 사기업에 몸을 던진 시기가 꽤 늦어서(개인적인 진로 탐색의 시간이 길었다) 열정과 의욕이 타버리기 전의 싱싱한 상태를 잠깐 봤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열심히 하고 잘해주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주겠지~"라는 마음이었다. 매우 긍정적인 자세라고 생각은 했으나, 걱정도 되었다. 그가 얼마나 헌신한들 그걸 고마워하는 자들은 적을 것이고, 도리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보다 시기가 약간 앞설 뿐,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결국 내 친구는 많은 세파에 치인 끝에 인간 불신론에 빠지고 말았다. 최근에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기가 그래서,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고 있다. 나도 내 인생이 팍팍하고 해서. 도입을 친구의 이야기로 했지만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은 최근의 내 극심한 분노 때문이다. 그 분노의 이유도 비슷한 부분이다. 아무한테나 잘해줘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매번 실수하고 깨닫는 이유는 대체 뭘까.


   사실 서로 무보수로 돕고 돕는 것이 가장 인류애 있고 낭만 있는 것이란 생각은 한다. 하지만 나 자신도 어떨 때는 인류애보다는 이기적인 선택을 하곤 하니까. 남들이 내 선의와 호의를 이용만 해 먹고 둘리로 여기는 부분 자체에 대해서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로 역겹기는 하지만 그것이 누구나 가진 인간의 면모일 테니.


   최선은 아니겠지만 나와 같이 인간 불신론에 사로잡힌 경우,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누군가한테 잘해줘서 그 반응이 제대로 나오기를 기대하지 말자. 그전에 주의 깊게 관찰해서, 나에게 잘하려고 하는 자세를 보인 자들에게만 잘해줘라. 나에게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그 대가를 치르게 하자.


   10명에게 호의를 베풀면 그중 1명은 고마워하겠지만 9명은 먹튀 한다고 했을 때, 굳이 10명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그 1명을 찾아내는 것은 효율이 고작 10%밖에 안 되는 일이다. 호의를 베푸는 것도 에너지를 소비하고 인간성을 소비하는 일이라서 헛되이 쓰면 자신이 말라죽는다. 호의와 재물은 아무한테나 베풀면 안 된다.


   무조건 베풀고 볼 일이 아니며, "무료"로 잘 관찰하여서 누군가의 대략적인 언행을 보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해볼 수 있다. 누구나. 그렇게 해서 괜찮다 싶은 사람에게만 호의와 선의를 베풀어서 내 편으로 삼는다. 물론 이 방식으로 하면 효율은 100%가 된다. 물론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다. 믿을 만하고 의지할 만한지 알아내는 것만큼이나, 믿을 만하지 못하고 의지할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도 대등하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시험에서 탈락한다면 그냥 저버리면 그뿐 아니겠는가.


   이렇게 살면 타인에게 배신당하는 경험 자체는 줄일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원래도 원수한테 칼/총 맞으면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믿었던 사람에게 칼/총을 맞아야 제대로 억울하지. 원수에게도 잘해주는 삶, 낭만은 있고 의의도 있겠지만 내가 고르기에는 나는 지쳤고 화가 너무 많아져서 불가능하다.


   나는 이미 내게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잘해주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무시하는 삶을 살아버리고 있는데, 이것이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 적어도 이렇게 해야 믿었던 자들에게 제대로 내 한정된 에너지와 인간성을 쓸 수 있고, 내 원수들에게 낭비하는 일을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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