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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Mar 17. 2022

감정을 집에 두고 다니고 싶다

   감정을 떼어서 집에 잘 둔 채로, 사회생활을 하고 싶다. 애매하게 몸이 좋지 않으면서 감기가 올락 말락 하는 그런 기분처럼, 내가 싫어하는 자들 때문에 내 기분이 격노할까 말까 하는 와중이다. 우습게도 감기가 올락 말락 할 것처럼, 기분이 극히 나빠질 수도 무덤덤하게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은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결국 외부 영향보다도 내 마음먹기가 결정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몇 년을 사회생활을 노예 티어에서 하면서 알음알음 깨우친 것은 결국 먼저 화내는 쪽이 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화라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감정에서 온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 해내면 감정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겠지만 내 역량은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 타인의 평가 따위, 기본적으로 무가치하며 우습게도 이런 것을 중요시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기업체를 다니다 보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지낸 것이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새삼 이런 나를 그냥 두는 두목이 사실 관대한 캐릭터인가 하며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좋겠지만, 나를 분노하게 하는 너무 많은 허접한 일화들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비현실적인 방안에 망상 주머니가 돌아가는 것이다. 감정을 떼어내서 집에 두고 다니고 싶다고.


   어떤 영화의 대사였는데, 대략 "출근할 때 자존심은 집에 두고 다니라"는 조언이었다. 그 영화를 제대로 본 건 아니지만 사회생활에 대해 생각할 점을 제공하는 영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자존심을 두고 다니는 것도 비슷한 것인가 싶다. 자존심은 감정에 포함될 수 있는 속성일 테니.


   그런데 나는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그냥 밖에서의 일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싶으니 자존심만 두고 다닐 일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두고 다니고 싶다는 점이 다르다. 자존심만 두고 다니면 개 같은 것들에 대해 인내할 수 있게 되겠지만 다른 것들은 그대로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요즘 피로감이 크다. 사회생활에서 희로애락을 그다지 느끼고 싶지 않다. 원래는 4 가지 중 분노가 가장 비중이 크겠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해 다 아예 염증이 나서 기쁨이나 슬픔, 즐거움 등에 대해서도 꽤나 회의적이다. 이 징글징글한 곳에서 5년 이상 10년 미만으로 꾸준히 부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감정을 그래서 집에 두고 다니고 싶다. 어차피 노예 티어에서는 감정도 사치가 아닌가. 그냥 기계처럼 일하고 싶다. 웃고 싶지도 않고, 화내고 싶지도 않고, 슬프고 싶지도 않고, 즐겁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우울증은 아니니깐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내가 싸늘한 것은 오로지 회사에 대한 것. 오늘 아침에도 오랜 기간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 관리하시는 분하고 잘 인사했다. 직원들에 의한 내 평가는 대충 "임직원들에게는 인사하지 않지만 그 외 사람들에게는 인사하는 사람" 같은 것이다. 임직원들을 보면 무시를 해버리는 것. 하지만 그 외 사람들에겐 친절하게. 잘하는 것이라곤 생각하진 않지만. 나도 이해타산이 있으니까 사실 그러는 것이기도 하다. 위에서도 언뜻 말했지만 여기는 규율 및 통제가 엉망진창이라서 나 같은 광인도 다닐 수 있으니 되는 것이지만, 좀 더 제대로 된 곳이라면 이러면 바로 숙청될 것이 뻔하다. 애초에 여기서는 망했으니까 여기 있는 동안에는 다 포기한 사람처럼 하고 다니는 것일 뿐.


   마인드 컨트롤은 못하겠으니, 그냥 집에 내 마음을 두고 다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에 대한 넋두리를 길게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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