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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Apr 25. 2022

퇴사 3원칙

   수년간 가끔씩 생각해봤던 것에 대해 정리를 해봤다. 퇴사를 고려할 때 필요한 3가지 원칙이다. 이 원칙은 먼저 나온 것이 제일 우선적이고, 뒤로 갈수록 우선도가 낮아진다.



원칙 1. 건강(육체/정신)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는 경우


   노동자는 "인간(자신)"을 수단으로 삼아 일을 해서 돈(임금)을 받는다. 근로를 수행하는 바탕은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나온다. 이 인간에게 제일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지표는 건강이다. 건강은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우열이 없이 대등하다. 만약 자신의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에 위협이 된다면, 과감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그런 곳에서 계속 "착취(그런 곳을 참고 다니는 것)"당하다 보면 결국 건강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게 된다. 그렇게 영구적 손상을 입은 상태로는 뒤늦게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없다. 사회나 회사나 냉정하기에, 멀쩡한 사람이 착취당해서 아파졌다 한들 동정은 하겠지만 취업을 시켜주진 않기 때문이다. 몸이 위험하거나 너무 축나거나,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면 그런 곳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퇴사하길 바란다.



원칙 2. 생계 부양의 부담이 없거나 적은 경우


   제1 원칙은 충족된 상황일 때, 다음으로 고려할 부분은 생계유지의 문제다.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제1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은 퇴사를 강행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겠다. 이런 경우에는 몸을 담고 있는 곳에서 일을 눈치껏 적게 해서 퇴근 후에도 힘을 아껴서 이직 준비를 하거나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조언하려는 대상은 가장들 보다는 사회초년생들 위주라서, 이런 경우 생계 부양의 부담이 적을 수 있기 때문에(사회초년생 중에도 가장 역할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다) 제1 원칙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과감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원칙 3.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각오를 한 경우


   제1,2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임에도 퇴사를 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각오가 아직 되지 않았다"라고 생각한다. 내 케이스다. 퇴사라는 것을 선택하고 책임질 것에 대한 각오가 없는 점이 내 현주소라고 생각한다. 그냥 퇴사를 해서 어디론가 재취업을 하는 것이든, 재직 중에 준비를 해서 이직을 하는 것이든 각오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 전자는 바로 공백기가 생겨나기 시작하며, 후자는 대학을 다니며 수능을 다시 준비하는 것과도 같이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그냥 절대 답이 없는 회사를 이렇게 몇 년 동안 계속 다니고 있는 것도 관성과 타성에 의한 것일 뿐 각오가 필요한 일은 절대로 아니다. 이 경우에는 역설적으로 퇴사나 이직을 하는 것이 각오와 용기의 증명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현실 도피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결론.


   퇴사의 제1,2 원칙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라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각오만 있다면 될 일이다. 그 누구도 계속 다니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우리 또한 그 강요를 들어줄 이유도 없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은 직장인과 회사에도 일대일 대응이 된다. 절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도 분명 존재할 것이며 매우 멋지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하기엔 절대로 절대로 쉽지 않다. "싫은 절을 좋은 절로 만들기"보다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이 수월하다. 이 상황에 처한 중이 할 수 있는 선택 중 가장 어리석은 것은 "절이 싫은데도 떠나지 않고 불만만 가득한 채로 계속 머무르는 일"이다. 


   사실, 이것은 선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이랍시고 불러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망하고 허접하지만 이 또한 엄연한 선택임에는 절대로 틀림이 없다. 이 선택의 대가는 해소되지 않는 불평불만, 미래에 대한 암담함 등이다.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괴로운 현재에서 당연히 벗어날 수 없다. 자신을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현재처럼 쓸모없듯이 미래에도 쓸모없을 것이다. 내 이야기이지만 해당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다. 아무튼 팩트로 내 전신의 골절을 일으켜두기 위해서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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