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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Jun 13. 2022

인간이 되고 싶었던 바둑돌

대군사 사마의를 보면서

   실내용 자전거를 천천히 돌리면서 책도 읽지만 TV나 유튜브도 많이 본다. 최근엔 "대군사 사마의"가 나오는 채널의 시간대가 운동 시간대와 맞으면 보고 있다.


   크게 봤을 때는 삼국지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나는 역사에 관심이 있고 삼국지도 물론 좋아하기 때문에 내 관심 대상에 들어있었다. 보통은 삼국지 후반 제갈량을 막아서는 숙적이며, 초중반 대부분의 인물들이 퇴장한 시점에 마침내는 최후의 승자가 되는 사마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제목 자체도 그렇고.


이 남자가 눈을 번뜩이며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란...(이미지 출처: 티빙 홈페이지)

   나는 아마도 고증은 그렇게까지 중요시하는 인간은 아닌 것 같다. 이 드라마도 뭐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각색을 "당연히" 했고 그것은 내가 대략적으로 알고 있거나 받아들이고 있는 부분과는 다른 부분이 많이 있다. 이렇게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엄연히 만드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문제니까. 있는 그대로 즐기는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물론 조조의 후계자 조비에 대한 이만큼의 미화와 보정이 또 있을까 싶은 부분이라든지, 아직은 먼 뒤(내가 보는 시점이 아직 주인공이 한 40대 후반인데, 결국 70대에 쿠데타를 일으키기 때문에)의 이지만 결국 자신이 몇 대 째나 섬긴 가문을 결국 배신해버리는 그 과정이나 캐릭터의 변모가 설득력이 얼마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사실 아직 안 봐서).


   내가 역사를 좋아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것을 내 삶에 접목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나는 언젠가 내 사업을 하고 싶기에 이런 패업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용인술에 대한 부분이나 처세술에 대한 부분이나 이런저런 교훈과 반면교사들을 보면서 말이다.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당연히 나랑은 비교도 못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들이라 할지라도 패가망신하는 일이 다반사다. 능히 왕을 보좌할 재능을 가진 자가, 알고 보니 자신과 뜻을 같이 한다고 생각했었던 "사람"이 기어코 "황제"가 되려고 하니 막아보려고 하지만, 도시락 폭탄을 받고는 죽는다(순욱). 후계자가 되지 못하면 죽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그 밑에서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주인(조식)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후계자들의 아버지(조조)한테 눈 밖에 나서 처형당한다(양수). 주인공 사마의도 자신이 보좌하게 된 조비를 후계자 경쟁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 엄청난 고초를 겪는다.


   그런데 보는 내내 저런 순욱, 양수, 사마의 이하 직접적인 주인들이 아니고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사실 그러하니까. 직접적으로는 "바둑돌" 정도로 스스로들을 자조하는 모습(대놓고 나온 것은 양수가 처형당할 때)을 비춰 준다.


   저렇게 잘난 자들도 권력자들의 바둑돌이나 포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서 나는 희한한 위로를 받았다. 사실 얼마 전에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니 내가 백치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너무 학벌이나 경력들은 화려해서 "왜 저런 사람들이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도 하면서 나 자신도 바닥이나 기고 있지만 다들 비슷한 건가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내가 작은 곳에 있으면서 깨달은 것은 결국 직원은 도구이자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바둑돌이나 포석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바둑을 두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가 품은 야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상에서든 드라마상에서든 결국 사마의는 수십 년의 세월을 인내한 끝에 도구 취급받던 상황을 역전시켜서 다른 자들을 도구 취급하게 되는 입지전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일련의 이야기를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바꾸려고 했다는 식으로 생각해보고 있다.


   역사에 남는 역적 리스트에 오르긴 했지만 그건 그 시대가 유교적 질서에 성립했으니 충성의 관점에서 뒤통수를 때렸으며 지금 시점에서도 그 부분의 멋은 심하게 없다고 할 수 있다. 다만 21세기에서도 비슷하게 극소수의 사람과 대다수의 바둑돌로 구성된 세상에서, 바둑돌이 사람으로 둔갑하는 일이 역사처럼 그렇게까지 패악 무도한 방법만을 통해서 이뤄지는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용인이 아닌 고용주가 돼서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꼭 고용주를 끌어내릴 것도 없고(나라와 회사는 비슷한 면이 있지만 다른 면도 매우 많다) 스스로 회사를 일으키면 되니까.


   잘난 사람들도 토사구팽 되는 일이야 동서고금을 보면 은하수의 별만큼 많다. 물론 저 기라성들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미천하기 때문에 불평불만이 억제되는 순기능이 조금 있다. 그래도 나는 역시 나만의 "업"을 세워서 "바둑돌"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둑을 두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저 주인공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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