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Nov 29. 2020

얼굴 없는 광기

다 날아가고 광기만 남아서 종종

 1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아마 중~고등학교 때쯤이었고 마을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퇴근길 사람들이 많아서 전형적인 가축수송의 모양이 되어버리고 말았었는데, 그때 실수로 인가 어떤 사람의 발을 밟았던 것 같다. 차라리 엄청 아프게 밟았으면 화를 내는 것을 듣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때 발끝의 감촉으로 봤을 때 밟았더라도 정말 사람 발의 끄트머리를 겨우 밟은 것 같이, 얕았던 것은 확실하다. 뭐 그것이 단지 내 개인적 의견이고, 심하게 밟혀서 아팠다고 하면 실수한 입장에서 할 말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 정말 처음 보는 사람인 나에게 굉장히 공격적인 언사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대충 그 정도 비난은 사람을 죽였을 때 정도에 받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 절대적인 시간이 길었던 것은 아니다.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잊히지 않고 어떠한 큰 인상으로 남아있다. 물론 인상일 뿐 얼굴도 목소리도 정확히 무슨 말이었는지도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다. 성별만은 기억나지만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 전달되었던 그 광기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이것이 내게 상처라는 것이 된 건 아니리라 생각한다. 살면서 그런 경험은 더 하게 되었었고 무뎌지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저 그냥 그때 느꼈던 광기만이 종종 그때 그런 사람도 있었지 하고 주기적인 존재 증명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많은 것들이 다 휘발되어버리고 그때의 광기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러면 적어도 내 심상 세계에서는 어떤 광기가 사람의 형태가 된다면, 그런 모양이 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아마도 평생 사람의 광기를 이미지 한다면 그 사람이 내 표준적인 래퍼런스가 될 것이다.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어찌 되었건 한 사람의 세계가 존속하는 한 남아 있을 어떤, 모양이 흐릿하지만 그래도 생생하고 이것은 무엇이다! 이름 붙일 수 있을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의도하지 않은 당신의 역정이 전혀 상관없는 나에게 광기라는 이름표가 붙어 영원히 남다니, 얄궂은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당장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