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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Dec 03. 2020

올해 수능이 끝나가네요

새로운 시작을 앞둔 사람들에게

 어제 뉴스를 보니, 12월에 진행된 수능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2020년은 그만큼 다사다난한 한 해였지 않나 생각합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컨디션 관리를 잘해도 만전의 상태로 시험을 보기 어려운데 시험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힘든 부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수험생분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100년짜리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에 제가 봤던 때보다는 수능의 비중은 적겠지만 그래도 수능이 가진 존재감은 매우 큽니다. 12년(혹은 그것보다 조금 더) 정도 달려왔던 목표였을 테니 아마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양상이 될 것입니다.


 교복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아직 못 들어본 것 같습니다만, 교복이 필요악처럼 존재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것이 빈부 차이를 가릴 수 있는 요소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부잣집 자식이든 가난한 집 자식이든 "평범"하게 지내왔다면 고만고만하게, 서로 비슷한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모양새였을 겁니다.


 이제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을 하거나, 각자 바라는 진로로 나 아가다 보면 한 해, 한 해가 지날수록 지금까지의 12년 정도와는 다르게 길이 갈라지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대입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던 때와 달리, 이제는 서로 선택한 길이나 실력, 운, 빈부차에 따라 더 극명하게 "위치"는 달라질 것입니다. 교복을 입고 지내던 지금까지의 12년과는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100년짜리는 아니지만, 아마도 진로탐색에 대해서 제대로 투자가 되었을지에 대해서 상당히 회의적이기에 아마 많은 학생들은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저는 그랬었습니다. 물론 이미 확고한 목표가 있는 학생들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지 못한 학생들보다 유리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시작의 유불리의 차이이지 절대 확정 요인은 아니겠지만요. 그래도 뭔가 벌써 도전하고 싶은 것을 알고 있다면 매우 좋으니 정진하시면 되겠습니다.


 12년 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도 말리기 어렵지만, 사회인이 되기 전의 이 유예 기간을 소중히 보내는 것을 추천하겠습니다. 사람은 경제적인 존재이기에, 불황 때문에라도 입학하자마자 스펙이 될만한 것들에 불철주야 정진할, 영민하지만 불우하기도 한 젊은이들임을 분명 알고 있지만 그래도 노파심이 드는 것은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이를 먹고 보니 결국에 그것을 찾지 못한 사람은 나이를 많이 먹어서도 다시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할 수밖에 없더군요.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더라도 본인이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큰 의미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한다면 정말 생활이 궁핍하더라도 버텨내기도 하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부귀와 영화가 있어도 절대 행복할 수 없는 기이한 존재입니다.


 대학생활을 하든, 다른 도전을 하든 20대 초중반은 다양한 활동을 해보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일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타인의 공백기나 독특한 이력 등에 대해서 색안경이 심하니 그들의 눈을 속이자면, 수능 이후의 시기에서 20대 중후반이 되기 전의 나이가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도 있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의 삶도 당연히 본격적이지만, 앞으로의 삶도 여전히 본격적입니다. 엇비슷하게 살아왔던 동창들과도 이제는 각자가 가진 부나 실력, 운 등에 따라 천차만별로 위치가 달라질 것입니다. 꼭 이런 사회적 위치의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에서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결국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결국 각자 다른 길로 흩어지게 되는데, 그 길이 당신이 원하는 길이고 인생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이 고민의 시점이 지금에야 되고 있어서 다소 불리한 상황입니다.


 자아실현이 어떤 직군에서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라면, 학교의 네임밸류보다는 관련된 학과 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기에 학교의 이름값으로 인생이 술술 풀리는 시대도 아닙니다.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다루는 곳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했는데 내 적성이 아니라면? 그러면 그것대로 확실히 적성이 아닌 길을 지우고 인생의 경로를 바꿔볼 수도 있겠죠. 절대 일방적인 손해는 없습니다. 보드게임처럼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것이 아닌 것이 인생이니까요.


 혹시 수능을 망했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절대 인생의 끝이 아니며 패배도 아닙니다. 그저 당신을 강하게 해 줄 시련이 하필 수능 때 나타났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픔이 있는 교훈을 통해서 성장한다면 더욱 발전할 수 있습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넘어졌던 것은 큰 이슈가 되지 않으니까요.


 이제 수능이 끝나면 오늘 시험을 봤던 사람들에게 12년 동안 바라봤던 하나의 목표가 영영 없어지게 되겠지만, 이후로도 인생은 계속되고 새로운 개별 목표가 생겨날 것입니다. 부디 앞으로의 길에서도 꿋꿋하게 본인의 목표와 인생을 관철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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