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Sep 26. 2022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뭐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겠는가?

   얼마 전의 일이다. 사내 마음의 편지함에 나와 사이가 상당히 나쁜 자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다. 익명성을 써서 무려 실명 저격을 한 것이다. 회의에서 괘씸하다며 성토를 하는데, 몇 가지 실마리를 통해 나 또는 내 쪽을 의심하는 듯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정체가 하이드(Mr. Hyde)가 아닌 이상, 내가 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아마 나는 연기 나는 총(smoking gun)을 든 것처럼 비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이니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해명할 가치를 1mg도 느끼지 못한다.


   그가 의심암귀가 들리든 말든, 나에게 좋지 않게 생각하든 나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상관은 전적으로 나나 내쪽을 의심하는 쪽에 있다. 헛다리를 짚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 얽매이는 모습을 보면 다소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잘난 듯이 말하고 있지만 30여 년 살면서 어느 정도 도입한 것이지, 선천적으로 탑재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을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근심 걱정했던 시간은 내 인생을 꽤나 많이 채우고 있음에 틀림없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타인이 어떻게 나 자신을 생각하든,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그 정확함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 자신을 알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남이 나를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남은 남의 시선대로 보고 생각할 뿐이다.


   물론, 타인의 충고와 조언 등을 모조리 경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주관성과 객관성의 균형을 위해서 우리는 자신이 스스로 내리는 통찰에 대해서도, 타인이 관찰한 부분에 대해서도 점진적인 검토를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자신의 통찰이 너무 커지는 것도 위험하듯이, 타인의 의견도 너무 커지는 것도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가끔 주위에서 너무 타인의 시선을 걱정하는 경우를 보면 그렇다. 나는 도리어 너무 신경 쓰지 않는 방향에 경도되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정말 아무래도 좋은 자들의 쑥덕거림 같은 것에 신경 쓰지 않는 삶이 훨씬 홀가분하기에 생각보다는 많이 덜어내지 않을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면, 그것은 상당한 문제 요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크게 마음가짐을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버겁고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넘겨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것들은 처음 시작이 어렵다. 그래서 시작을 최대 50%로 쳐주는 속담도 있다. 누구나 아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생각에 너무 심하게 묶여있다면, 모조리 떨쳐내 보는 것도 쉽지는 않으나 해볼 만한 일일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특수성과 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