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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03. 2022

그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하자

   인생의 불행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 최근 생각해봤다. 오늘까지의 나 자신이 낸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해야 하지만 해야 하는 줄 몰랐던 무언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하지 않은 것 때문에 사람은 불행해진다"는 것이다.


   예시로 건강을 제시하고자 한다. 현대 의학에서 건강을 위해 제안하는 것들은 현대인들이라면 이미 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들이다. 금연, 금주, 주기적이고 어느 정도 체력을 소모하는 운동을 하는 것, 기름지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 자제, 스트레스 조절, 충분한 수면 및 휴식 등이다. 몇 가지 더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통념으로 아는 부분 정도면 되니 검색을 하지는 않았다.


   시황제가 애타게 찾았다던 전설의 물건, 불로초를 생각해본다. 현대 의학계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불로장생 또는 불로불사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미지의 영역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그런 약이 있다면 아무렇게나 살아도(의학계의 권고와 정 반대의 삶) 걱정이 없을 것이나 몽상에 가까운 조건이다.


   의학계의 권고를 무시한 채 살다가, 유한한 생로병사의 굴레를 더욱 가속해서 돌려서 주어진 수명을 더욱 빨리 태운 상황을 생각해본다. 무엇을 후회하게 될까? 젊을 때 불로초를 찾아 나서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아니면 "따분한" 의학계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까? 아마 후자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현실과 팩트에 부딪힌 인간은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때가 지난 다음에 얻는 지식이나 지혜의 가치는 0에 가깝다. 사후약방문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죽은 뒤에 처방전이 나온 상황을 말한다. 이미 환자는 죽었는데 처방전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옛날에 대입을 준비하던 시기의 일이다. 나는 고3 때 완전히 길과 감을 잃고 수능을 망했다. 자연스레(?) 재수를 했고 그럭저럭 대학을 갔다. 웃기게도 그때쯤(대학 입학 직전) 되니 내 나름대로의 공부법이나 전략 등이 깨달아졌다. 개인에게 있어서는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겠다.


   동네에 아는 몇 살 어린 동생이 있었고, 그 친구도 대입을 준비할 나이가 되었다. 나와 비슷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조언을 했지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재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비난하거나 아래로 여기지 않고 덤덤하게 내 지식과 경험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나도 분명 저 시기에 타인의 조언을 듣지 않았었기 때문이다(다시 말하지만 나는 고3을 아주 헛되이 보냈다).


   그때 느꼈다. 사람이란 대부분(나를 포함해서) 뒷북은 잘 친다는 것을 말이다. 뒤늦게 잃어버린 건강을 챙기거나, 눈앞에서 놓쳐버린 일확천금의 투자 기회라든지, 가족이나 부모와 이 세상에서 헤어지고 나서 이랬으면 좋았을 걸, 저랬으면 좋았을 걸 한다든지 그럴싸한 사례는 밤새도록 만들어낼 수 있겠다.


   이미 아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해야 한다. 그래도 후회나 뒷북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겠지만, 알고도 하지 않아서 영원히 놓친 것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모르더라도 약간만 찾아보면 나오는 것들, 그것은 대부분 조언자들이 직접 겪은 피 묻은 절규이자 눈물에 젖은 회한이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조언은 이미 너무 많다. 그런 조언이나, 조언도 아니며 이미 스스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실천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적인 후회와 뒷북만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알고 있는 것을 하자. 지금 해야 하는 것을 하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불행과는 조금 멀어지고 행복과는 조금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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