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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독준 Nov 21. 2022

왕의 그릇

   나는 매번 두목 두목 하면서 폄하하고 있지만, 당연하게도 두목은 엄연한 왕이다. 21세기에도 제왕학의 토대가 든든한 이유는 기업가의 길이나 군주의 길이나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군주나 영주는 물론 진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겠지만, 그런 느낌은 아니더라도 분명 기업들도 제품이나 용역을 무기로 해서 타인의 돈(이윤)을 벌어들이는 것은 전쟁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구에 역병이 창궐하기 전에는 아주 잦은 빈도는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회식도 있고 했었다. 하지만 거리두기 등이 활성화되면서 회식 자리는 많이 줄었었고 다시금 약간씩 자리가 생기고는 있으나 역병 이전만큼은 아니다. 얼마 전에 조금 기이한 조합으로(즉, 어지간하면 이런 구성원으로 회식을 할 확률이 희박한) 회식 자리가 있었더랬다.


   회식 구성원 중 하나가 두목의 먼 친척(즉, 무려 "종친") 의혹이 있다가 금방 정체가 탄로 난 자가 있었다. 나는 그와 두목의 거리(촌수)가 궁금했다. 과연 먼 친척이라는데 어느 정도인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를 약간 캐보니 먼 친척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4보다 크고 8보다 작은 값).


   그런 자리에서 할 말과 하지 않을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타입의 시한폭탄 같은 자였기 때문에 조마조마한 자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거기서 글감을 얻었기에 내게 조금은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제목으로 붙인 "왕의 그릇"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저 자 덕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두목에게는 직계로 몇 명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들어와서 일을 어느 정도 하다가 퇴사했다. 그자에 대한 편들기(?)랍시고 두목이 직계한테 한 너무했다는 일화를 하나 들었다.


   "직계가 연차를 쓰고 집에서 쉬는데, 두목이 일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백두가 아니라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백두니까 사실 그럴 수는 없다. 속으로 참으로 실소가 나오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왕의 그릇이 되지 못하는군. 이것이 내 소감이었다.


   정보제공자였던 그 종친에게 떨어지는 것은 별로 없다는 것도 그에게는 불만이었던 같으나, 그것은 그럴 수 있다. 그 직계는 자신이 비록 체감하지는 못하였으나, 수많은 특혜와 편의 제공이 있었다는 것을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뻔히 알고 있다. 왜냐하면 정말로 특혜와 편의가 제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은 근거는? 백두였기 때문이다.


   가족 회사에서는 백두 혈통이면 자동적으로 얻는 특혜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별 볼 일 없지만 백두가 아니라서 얻는 특혜가 쥐꼬리만큼은 있을 것이다. 적어도 두목이 부모나 친척이지 않을 테니, 퇴근해서도 감시하기는 어렵다는 점일 것이다.


   왕의 그릇이 되지 못하는 결정적인 것은 백두 혈통이면서 혈통이 아닌 자들의 몇 되지 않는 이점도 가지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혈통이 아닌 자들은 한계가 뚜렷한 법. 어떠한 계산이 선다면, 절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혈통이 아닌 자들이다(잘 나가고 선진적인 회사 말고, 지리멸렬하고 주먹구구식인 가족 회사에 한정하고 싶다. 내가 그런 곳만 다녀봤기 때문이다).


   주인 의식은 주인이 아니면 생기지 않는다. 아니면 그것에 대한 명확한 보상이 제시되고 신용되어야 할 것이다. 카페 사장과 아르바이트를 생각해보자. 카페 주인은 상품을 많이 팔고 싶을 것이다. 그게 다 자신의 매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급이 확정된" 아르바이트생을 생각해보자. 하나도 못 팔거나, 2잔 팔아도 시급은 나오며, 순식간에 300잔을 팔아도 같은 시급이 나온다면 당연히 파리 날리는 것을 원할 것이다. 물론 그래서는 일 자리의 미래가 없으니 꽤 불안하겠지만 말이다.


   두목의 성향을 봤을 때 결국 직계들의 것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그중 하나는 백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떠나갔다. 그리고 그 두목의 돈으로 더 공부하러 외국으로 간 것 같다. 글쎄, 가족 회사에서 일하다가 에잇 하기 싫어하고 퇴사한 뒤 부모의 큰돈 나갈 외국 유학이라... 그런 값비싼 선택지가 가능한 경우가 어디 많겠는가?


   가족 회사의 계승은 혈통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이 물론 전부는 아니다. 능력과 식견(왕의 그릇)이 있어야 계승 후에 적어도 현 상태를 유지하거나, 나아가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 창업자가 될 수도 있고 이것은 혈통이 본인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또한 성공시키려면 능력과 식견(왕의 그릇)이 있어야 하는 점은 같다.


   남을 보고 얻은 깨달음은 내 거울과 채찍으로 삼아야 한다. 왕의 그릇을 갖춰나갈 것이 지금의 나 자신에게, 나아가서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니까. 21세기에서 살아남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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