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독준 Mar 21. 2023

마스크 사랑은 한동안 이어질 것

   나는 통근을 지하철로 한다. 어제 흥미로운 기사를 봐서 오늘 출근길에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적당히 어림잡으니 마스크를 쓴 사람이 90% 정도 된 것 같았다. 어제 대중교통에서 의무화가 해제되었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헤드라인을 훑었던 기사에서는 이 현상의 가장 주요한 이유로 사람들이 타인의 눈치를 본다는 식으로 분석한 것 같았다. 글쎄, 마스크를 시국 이전부터도 매우 사랑하는 자로써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좋으니까 쓰는 것이다.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쓰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물론 어제는 미세먼지도 정말 너무하긴 했다. 아래는 내가 통근 때 찍은 한강뷰이다.

한강 위에서 한강을 찍었지만 시야가 엄청났다

   물론 이미 실내 마스크 착용 강제가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건물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따른 민원이 관리사무소에 계속 들어오니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것을 지양해 달라는 방송이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 타인들에 의한 압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정화되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저 타인의 눈총과 압력을 사람들이 마스크를 계속 애용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본다. 뉴스를 확인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 모를 수도 있다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이것 또한 직접적인 요소가 아니다. 사람들과 마스크는 이제 하나가 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역시 내 체험에 근거한다. 내가 다니는 곳은 철저하게 반재택근무를 지향했기 때문에 나는 이 특수한 시국에서도 집-회사-집 무한 반복을 하며 살았다. 여기서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맨 얼굴과 마스크를 한 얼굴이 2가지로 각인되어 있고 이질감이 없다. 하지만 시국 이후에 입사해서 대부분 마스크를 하고 보고 살았던 사람들은 그냥 마스크와 얼굴이 합쳐져서 한 가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맨 얼굴을 보면 매우 어색하다. 마스크가 붙어 있는 것이 그 사람 같고, 마스크가 없으면 위화감이 대단하다. 


   평범한 사회생활이 비슷하듯이, 대부분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십중팔구이기 때문에 알아서 얼굴을 가려주고 있으면 매우 좋다. 역지사지의 정신으로, 상대도 그렇지 않겠는가? 또한 마스크의 보우를 통해서 표정관리를 덜 해도 된다는 강력한 장점이 사회인에게는 존재한다.


   상당히 자유롭게 (소리 안 나게) 입 모양으로 욕하기라든지, (소리 안 나게) 하품한다든지, 희한한 표정을 짓거나 이죽거리거나 할 수 있다는 것은 마스크의 큰 장점이다. 사실 시국 이전에도 위와 같은 의도로 마스크를 애용한 자로써, 마스크를 하지 말라는 상당한 외압에 시달리곤 했다. 뭐 그래도 반골 정신으로 감기 걸렸다고 하거나 비슷하게 적당한 말로 받아쳐버렸다.


   그 외에도 생각해 볼 만한 마스크에 대한 사랑의 이유를 생각해 봤다. 약간 관점이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얼굴을 가린다는 측면에서 발생한다. 시쳇말로 "마기꾼"이라는 말이 있다. 마스크를 벗으면 외모가 다 드러나지 않겠는가? 그때 다소 기대를 저버리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곤 한다. 실제로 마스크로 얼굴을 어느 정도 가리는 것에 외모 "상승" 효과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외모에 자신이 없으면 마스크를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이 나라는 보통 수준의 외모지상주의의 나라가 아니다. 아니, 그냥 인류가 외모지상주의에 거스르지 못하니까 그냥 나라 탓보다는 그냥 인간의 내재된 성향에서 발현하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다.


   현대 사회를 익명성의 사회라고 한다. 도시화, 인터넷 등... 특히 인터넷은 비대면이니까 익명성이 강하나 도시의 사람들은 얼굴까지 가리고 다니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시국이 3년 넘게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실제의 얼굴도 가리기 시작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사실상 문화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가 다 같이 벗는 게 아니고 자신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 자유일 수도 있으나, 나는 타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나(타인은 마스크를 하고 있다) 타인은 내 얼굴을 볼 수 있다(나는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는 것은 생각보다 떨떠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큰 변수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여름이다. 당장 봄이 오고 선선할 때까지는 양상이 비슷하겠지만 더운 날의 마스크는 정말 아무리 마스크를 사랑하는 나로서도 쉽게 자신할 수 없다. 아마 한 여름에도 과반수가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우리의 의복 문화가 바뀌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꽤나 흥미로운 일이라서 혼자 주목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죄송한 "척" 하기(사회생활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